바람을 만드는 사람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첫 장을 열어 몇 줄만 읽어보면 이국적인 고원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빌딩 숲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낯선 풍경들. 드넓은 초원을 매섭게 후려치는 바람.
소설 [바람을 만드는 사람]은 한국인 작가가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낯설고,  새로웠다.
 
소설의 배경은 남미 파타고니아’, 주인공은 예순 여덟 살의 목동 네레오 코르소. 바람과 함께 평생을 살아 온 네레오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좇아 한평생을 살아온 네레오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소설은 한 밤 중, 네레오의 집에 불어 닥치는 바람소리로 시작한다. 그 소리에 깬 네레오는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어 오칸의 목상을 만지고, 마테 차를 마신다. 네레오는 어쩐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며칠 전에 그를 찾아온 만물상 발터의 제안 때문일 것이다.

양들의 평화로운 서식지인 고원에 한 번씩 찾아오는 퓨마가 한 소녀를 덮쳐 죽였다. 목장 주인인 소녀의 아버지는 퓨마를 잡기 위해 나서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만물상 발터는 소녀의 아버지에게 그 퓨마의 가죽을 가져다줄테니 현상금을 달라고 한다. 발터는 고원에서 가장 사냥을 잘 하는 네레오를 찾아와 퓨마를 잡아달라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오른 쪽 눈 밑에 길게 찢어진 상처가 있는 그 살인 퓨마를...
 
퓨마를 잡는 일은 양을 키우는 가우초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였기에 네레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살인 퓨마를 사냥하는 일은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다. 네레오는 며칠 먹을 음식과 사냥개들을 데리고 산으로 계속 올라갔다. 몇 날 며칠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살인 퓨마와 맞닥뜨렸지만, 퓨마와 싸운 개들은 모두 죽고, 네레오도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진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한 순간, 한 젊은 남자가 걸어 왔다. 네레오의 음식과 물을 마신 젊은 남자는 네레오에게 길을 묻는다. 안데스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고 싶다는 젊은 남자는 사형수였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목으로... 하지만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온 남자는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던 중 호송차가 전복해 이곳까지 도망친 것이다.
 
크게 다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네레오와 도망자 신세인 젊은 남자에게 무시무시한 바람 푸엘체가 기다리고 있다.
 
의식이 아득해진 네레오 코르소는 바람을 만드는 사람 웨나의 소리를 들으며 과거의 자신을 회상해본다.

여덟 살 네레오는 아버지와 술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앞으로 닥칠 운명을 모른 어린 아들은 그저 술집의 담배 냄새가 싫다. 오랜 기다림 끝에 누군가가 술집으로 들어오고, 아버지는 그에게 돈을 받고 아들을 판다. 네레오는 그렇게 고원의 목동이 되었다. 무능하고,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도망간 어머니, 지붕에서 떨어서 즉사한 형, 자신을 팔아버린 아버지까지... 녹록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다.

 

고원의 오두막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 아이에게 바람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쉬지 않고,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소리에 아이는 절규했다.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늙은 가우초가 아이를 달래기 위해 찾아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전해져오는 신화와 전설을... 

그 중 바람을 만드는 남자 웨나 이야기가 아이를 사로잡았다. 신비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이제 바람이 무섭지 않았다. 갈기 머리를 휘날리며 검은 말을 타고 달려온 남자가 손을 흔들자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따뜻한 바람이 닿으면 생명이 솟아났고, 차가운 바람은 생명을 거둬들였다. 웨나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점차 양을 잘 다루는 가우초가 된다.
 

 

웨나 이야기를 들려준 늙은 가우초가 죽자 네레오는 양치는 일에 몰두하면서도 이따금 웨나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기적적으로 웨나가 네레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의 비밀을 혼자만 알게 된 네레오는 기쁨으로 넘친다. 그 이후로 네레오는 또 한번 웨나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그를 찾기는 쉽지 않다.
 
네레오는 신입 가우초 후안에게서 웨나를 느끼기도 한다. 그처럼 강인하고, 영민한 사람이라면 웨나가 아닐까. 하지만 팔씨름 대회에서 온 힘을 다해 경기를 하던 후안이 경기에 지면서 몰골이 비참하게 변한다. 그는 웨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네레오가 알고 있는 웨나는 신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다. 하지만 신성하고, 고결한 그 무엇이다. 네레오 코르소는 스무살이 되던 해, 자신이 믿는 웨나를 찾기 위해 고원을 나온다. 좁은 울타리를 나와 세상에 뛰어든 것이다.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은 남루한 행색의 네레오가 어디를 가는지 궁금해 했고, 네레오는 그들에게 웨나를 만나러 간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네레오를 이해하지 못한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시기에 전설을 좇아 길을 떠나는 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터.

 

 

그러나 어느 마을 술집에서 만난 아나라는 아가씨만은 그의 말을 믿어주었다. 믿을 것이 하나 없는 세상에서 믿을만한 이야기는 오히려 전설 속 웨나라는 것이다. 웨나를 만나면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거라는 아나. 그녀에게도 아픈 과거와 고달픈 현실이 있었다. 거리의 여인이었던 엄마가 길거리에서 죽으면서 낳은 아이가 아나였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삶도 거리에서 이뤄졌다. 태어나면서 어긋난 삶이지만 죽어서는 멋진 묘지에 들어가리라는 그녀의 마지막 소원도 사기를 당하며 무너진다. 그리고 웨나를 믿어 주었던 아나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바다에 떠오른다. 아나의 죽음으로 인해 네레오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먹지도 자지도 않는 고행이 계속되면서 네레오는 죽음의 문턱에 선다. 그런 네레오를 대목장 주인이 거두어주고, 가난한 절름발이 소녀 루이사가 그를 간호해준다. 네레오는 루이사에게서 순수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루이사가 아들을 낳으면서 그들의 행복은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변하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루이사의 아버지가 옛날에 사둔 땅값이 폭등하면서 예전의 루이사는 사라진다. 돈과 권력을 좇아 탐욕스럽게 변해가는 루이사를 보며 네레오는 슬픔에 빠진다. 그러면서 이 삶 또한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다시 거친 세상으로 나아간다.
 
순수한 꿈과 열정이 가득한 웨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푸에고 섬에서 막을 내린다. 네레오는 이곳에서 용맹한 전사 오칸의 목상을 만드는 100세 노인을 만나게 되고, 삶의 경계에서 벗어나 진정의 삶을 찾은 오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네레오는 노인에게 바람을 만드는 남자 웨나에 대해서도 묻는다.
 

"웨이나(웨나)는 어디에 있나요?"
"그는 당신이 생각하는 곳에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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