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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 ㅣ 바일라 9
김혜진 지음 / 서유재 / 2020년 1월
평점 :

'길'과 '인생'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게 하는 소설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이라니...
평소에 집 밖을 나가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열게 된다.
어느 길이 더 빠르고, 편리한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 방법이 몇 가지인지, 어떤 길로 가야 더 좋은 풍경이 있는지
생각해보며 길을 선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리라.
나 또한 어느 순간, 내가 걷고 있는 길의 풍경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으니...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의 화자인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여러 가지 길을 연구한다.
본인도 자신을 '길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하듯.


어느 날, '나'의 가족은 이사를 가게 된다.
고등학생인 '나'는 학교에서 새로운 집으로 가는 루트를 찾는다.
조건은 하나. '새로운 길로 가는 것. 반복하지 않는 것'
이 길들은 내가 학창시절에 살았던 곳과 자주 겹쳤다.
그래서 더 익숙하고, 친근하게 소설을 읽어 나갔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길의 풍경과 얼마나 비슷한지 추억을 되돌아보며.
소설에서 '나'는 모와 네이라는 친구가 있다.
모와 네이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모든 것을 기록하고, 소유하려는 차가운 모와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눠주는 사랑이 넘치는 네이.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세 사람이 따뜻한 우정을 쌓아 나간다.
'나'에게는 언니와 오빠가 있다.
'나'는 막내이지만, 언제나 아픈 언니 뒤로 밀려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형제 자매 중에 아픈 아이가 있다면
나머지 아이도 상처를 입으며 자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언제나 아픈 아이 위주로 가정이 돌아가기 때문일테다.
'나'는 아픈 언니가 안쓰러우면서도
언니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인형'을 통해 드러낸다.
'나'와 '네이'는
언니의 인형이 맺어준 관계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듯, 자신의 물건을 하나씩 처분하던 언니는
엄청 소중하게 간직해온 인형까지 팔겠다는 결심을 한다.
'나'는 그 인형이 갖고 싶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다.
그 인형을 사간 사람이 바로 네이인 것이다.
나와 모, 네이 그리고 언니와 오빠까지 연결되는 관계...
결국 다시 병원에 입원한 언니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오빠와 나, 모는 언니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데...

조용하고, 나직하게 삶에 대해 사색하게 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좋아하는 모는 실제 출간되어 있는 소설을 끄집어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보르헤스의 말>에는 특이한 복권을 파는 나라 이야기가 나온다.
당첨되면 돈을 받거나 벌금을 내야하는 복권이 있다.
그런 복권은 실제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 삶을 생각해보면
인생이 그런 복권과 같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안에서
밝고, 건강하게 태어나는 한편,
어떤 사람은 힘든 환경에서 병을 지니고 태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를 겪기도 한다.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이
상인지 벌인지 모르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라는 길이 있기에
우리는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을 걷다가 좋아하는 풍경이 있으면 감사해하고,
힘들게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 길이라해도 걸어야 한다.
죽음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병실에서 끝나지 않는 미드 시리즈를 보며
구글 어스로 길을 찾는 언니를 바라보면
마음이 아파온다.
남들은 떠나고 싶을 때, 훌쩍 짐을 싸서 가면 되지만
언니는 그럴 수 없다.
그런 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 속초로 간 것이다.
그곳에서 언니가 본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자유를 누렸을까.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을 읽으며
고등학생이었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공부하느라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없던 시절,
나도 소설 속 '나'처럼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나만의 길을 만들고 싶어했다.
실제로 그럴 수는 없었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인이 되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자
길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졌다.
참 아이러니하다.^^;
나의 10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을 읽으며
인생이라는 길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슬프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만나
행복을 느껴본다.
행복을 느껴본다.
인생을 살아가며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을 읽으며
다시 묵묵히 길을 떠나보면 어떨까.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쓴 솔직 담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