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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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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경애의 마음>을 읽었다. 출근과 퇴근은 40분 정도로 때로는 한 챕터를 하루에 다 읽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조금밖에 읽지 못하고 다른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은 두 쪽 모아 찍기로 인쇄되어 책을 펴면 양쪽 면에 총 4페이지가 보였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옆으로 누워있는 활자들을 보기 위해 책을 가로로 들고 아래, 위로 페이지를 넘겨가며 보다가 때마침 목 디스크가 악화되어 뻐근한 뒷목을 수시로 붙잡아야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직장에 무사히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써야 한다는 게 내게는 꽤 힘든 노동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의 내용들이 머리에서 한 영화의 여러 씬처럼 저장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의 아주 밀도 있는 감정씬이 이어지고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나면 "이번 연기 아주 좋았어요." 같은 잡담이 오간다. 그 사이에 나는 환승할 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현실의 사람들이 밀치고 손을 붙잡고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풍경을 지켜본다. 그 시간 동안 배우들은 다음 씬을 준비한다. "레디.” 그리고 책을 펼칠 때 배우들은 다시 연기를 시작한다.    

 

내가 그런 상상을 해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애의 마음>은 끊임없이 과거의 어떤 장면을 소환한다. 상수와 경애의 현재의 삶은 지지부진하다. 새로운 계약, 파업, 인터넷 커뮤니티, 옛사랑의 접근 등 그들은 자신들의 현재의 사건들에 부딪히길 거부하고 뒤로 미뤄놓는다. 그 대신에 과거의 어떤 영화 같은 순간들을 떠올린다. 그 순간들은 그들이 아팠고 슬펐고 행복하며 따뜻했던 순간들이다. 그 빛나는 순간들에 비해 지금은 그들이 원했던 바가 아닌, 오직 돈을 벌고 회사에 잘리지 않기 위한 순간들뿐이다. 과거의 장면들이 아름다울수록 현재의 삶은 무미건조하며 반대로 현재의 삶 때문에 과거가 아름다워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과거의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그 과거로부터 연결된 현재의 내가 있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사라졌고 지금의 지치고 보잘것없는 내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듯하다. 

 

<경애의 마음>의 등장인물들은 물속에 들어가 잔뜩 웅크리고 숨을 참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주 깊은,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심해 같은 영역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이 물 밖에서 따뜻해 보이는 햇빛을 쬐고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사는 데도 그들은 밖을 거부하고 숨을 참고 물로 들어 가본다. 그곳에는 상수와 경애의 공통된 친구, 은총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들여다보려 애쓰지만 곧 숨이 턱턱 막히고 다시 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 밖에는 리베이트와 국회의원 아버지와 폭력을 사용하는 형과 파업을 실패하게 했다는 낙인과 직장상사의 교묘한 핍박들이 있다. 물 안에는 조 선생언니데이빗 린치은총과 그들의 짧은 단편영화가 있다. 그런 세상을 견디며 사는 게 얼마나 추운 일일까? 그래서 경애는 그 모든 걸 단지 춥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경애의 마음>에서 상수와 경애는 미뤄뒀던 현실에 다시 손을 뻗어보며 물 안과 밖을 연결해보려 애쓴다. 현실의 벽은 단단하지만 그 아래에 자신들의 연결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기에 그들은 현실의 벽을 넘어보려는 것이다. 경애와 상수가 잡는 손은 연결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연결된 세계와 마음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이런 세상에 나와 연결된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세상의 모든 것이 긍정되기도 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작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사랑이라는 말 이외에 더 말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경애의 마음이라면 나에게도 물 밑 세계를 같이 들여다볼 누군가가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세심하고 쉽게 편 가르지 않으며 차근차근 경애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이 소설을 경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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