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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가족..이라고 했다. 엄마와 아빠와 아들과 딸.. 오빠와 동생과 언니와 누나는... 가족이라고 했다.
가족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있었다.
그 집단의 이름이 가족이었을수도 부족이었을 수도 인종이 었을 수도 있겠으나 가족은 가슴깊은 곳을 찌르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짜르르 관통하는 전류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어였다.
엄마는 딸의 감정을 공유한다. 아빠는 엄마의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형제나 자매는 동시대 태어난 동지의식으로 그 또래의 질풍노도를 공유한다. 온갖 못난 짓을 내보이고 표독스럽고 변덕스러운 성질들을 다 드러내고 어이없는 감정의 변화도 아무런 가감없이 드러내 놓고 기대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집단이 가족이다. 똥싸고 오줌싸고 토하고 자지러지고 침흘리며 눈깔을 뒤집고 허연 흰자위를 내보여도 가족은 쉽게 잊고 쉽게 일상화 되게 하는것. 가족은 그런 것이었다.
감정의 공유라는 것은 가족이 출원한 특허가 아닐까?.. 흉내낼래야 흉내낼수가 없는 그 고유한 성질. 그런데..돌연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식탁에서 같은 국과 밥을 먹지만 그 시선을 마주할 수 없고 동시대에 질풍노도를 겪고 있으나 힘이 될 수 없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빠의 하는 일을 알 수가 없고 엄마의 숨겨진 사생활을 드러낼 수 없으며 아들의 방화의 욕망을 이해할 수 없고 누나의 비정상적인 집착의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 어느새 집은 흩어졌던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마무리하러 집결하는 집결장소 같은것. 집단의 구성원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들어야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사라지는 ... 돌연변이 집단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이런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내 부탁하나 들어줄래?" "나 좀 안아줘" 프리허그의 부탁처럼.. 그 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버린 집단이 되었다. 열두살짜리 여자아이가 사라지고... 가족은 본능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몸이 끄는 대로 온갖 촉수가 가족구성원의 사람지에 곧두서 버린것이다. 하지만 몸의 곧두섬. 머리의 불안함. 일상이 깨어져버린 것에 대한 불만족..이 다가 아니었을까? 열 두살짜리 여자아이가 무사하게 돌아오면 이 가족은 다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돌연변이는 고쳐지지 않는다...그렇게 쉽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