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한 연구 - 하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스님은 상놈이어라’ 그녀에 목소리가 움막에서 울려 퍼진다. 그렇지만 그 말은 결코 그를 모독하는 말이 아니다. 참 언변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 천착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인간의 내적 갈등을 찾아 나서는 모습, 그리고 변화의 소용돌이를 인내하는 자만이 결국 깨달음을 얻는다는 사실. 그리고 처절한 앎과 깨달음을 향하는 도전, 소설에서 인상적이었고, 영화에서 그런대로 괜잖다라고 생각했던 작품,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의 진한 사투리와 <그렙지비>, 특성있는 자신만의 언어와 서술어의 묘한 운율에서 박상륭에 푹 빠져서 그를 탐익하고 추앙하고 존경하지 않을까? 나 또한 그에게서 아, 이런 식의 이런 내용으로 이런 어투와 이런 어휘로 충분히 좋은 작품을 생산할 수 있겠구나 그렇지만 내가 더 관심을 가진 것은 화자가 도대체 갈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물론 어리석은 질문이겠지만 말이다.

이문열이<사람의 아들>로 우리 문화에서 갈등을 빚고 고뇌하는 젊은 신앙인을 대상으로 해서 기독교적 신앙심에 깊이 있게 도전하고 천착해 보았듯이 <죽음의 한 연구>는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것이었다. 작품에서는 전라도의 진한 사투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화자의 대화에서 그처럼 농익은 사투리가 툭툭 튀어 나와서 자칫 표준어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어렵고 답답한 어휘의 집합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사투리는 <죽음의 한 연구>의 글 맛을 좀더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정말 싫고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미안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죽음의 한 연구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작가의 도전에 다시 한 번 갈채를 보내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작금에 와서는 물질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정신이 죽지 않았나 말해보지만 세상이 혼란스럽더라도 철학은 살아있고 철학이 살아있더라도 어느 세계에든지 물질은 선망의 대상이었음을 잊지 않게 한다.

그 긴 뻘 밭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훔쳐 볼 수 있는 계기 그리고 한국적 인식과 원형적인 샤머니즘의 본질과 새 문화와의 갈등 그에게는 늘 죽음이 따라 다닌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를 쉼 없이 구타하고 상처 내는 화자. 감히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민감하거나 방대한 자료와 지식이 필요한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의 소설이 좀 가벼움과 가까이 있다면 분명 죽음의 한 연구는 어쩌면 그 변방에서 맴도는 작품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다. 여름 방안에 배를 깔고 열심히 읽었던 기억, 그리고 이 방대한 종교적 스키마의 필요성을 뒤로하고 감히 독서토론을 시도해 보았던 작품이 아니던가. 앎은 깨달음이고 무지는 도전의 좋은 조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지하므로 수 없이 도전해 보았던 세계 감히 죽음에 한 연구를 읽으면 살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억지스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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