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서경식 ∙ 김상봉 만남』(돌베개)

- 저자들과 대화하기


이 책에 담긴 내용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으로 2008년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나의 현실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말들, 왠지 무겁고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반면, 내가 이렇게 생각없이 살아도 될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현실에만 안주하며 세속화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서경식과 김상봉의 책을 한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더 유익하겠지만.


■'나와 너'가 이곳에 서 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절망적인 고통과 투쟁이 토양이 되어주었는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다.

나 : 그런데 우리의 위대하신 철학자들은 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나오지 않는 걸까? 서점에도 별로 없다. 아직까지도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다. 기껏해야 프랑스의 사르트르나 들뢰즈, 독일의 헤겔, 하버머스 등등, 우리 철학자들의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 (지식인의 언어를 비판하며) 루터가 성경을 번역할 때 시장 바닥에 앉아서 번역했다.

나 : 그런데 오늘날 지식인은? 어디에 숨었나. BK21 사업에 열중하고 있나? 영어로 논문 발표준비를 하고 있나? 분명 한글인데도 이해하기 힘든 책들! 지식인들은 글쓰기부터 훈련해야한다. 쉽고 이해하기 편한 글쓰기부터.

■ 일본은 내부의 갈등과 억압을 중국이나 조선과 같은 타자에 대한 공격으로 봉합하고 정당화시켜왔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이 되었다.

나 : 임진왜란이 그랬고, 한일합방이 그랬다. 멍청하게 당하기만 한 조선은 뭔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결론인데....... 아직도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한치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을 배우자는 말도 없으며, 일본을 극복하자는 말도 없다.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냥 쪽바리인가? 아니면, 은근히 부러운 나라인가? 가깝고도 먼 나라!

■ '선진국이 된다. 강대국이 된다. IT 강국이 된다......'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5,18에 이르기까지 어떤 '뜻'으로 이어져온 투쟁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일본처럼 될 수도 있다.

나 :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과거를 쉽게 잊어버리고 너무 쉽게 화해하지 않는가? IT강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진국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인과는 별로 상관없는 뜻없는 것에 우리는 모두 정신을 빼앗겨 있다.

■ 지금 이 나라의 권력이 대다수 국민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엔 회칠한 무덤처럼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대체 국가가 내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져 묻지 않는 국민들!

나 : 우리 국민은 '국가'와 '나'를 동일시한다. '국가'의 부가 곧 '나'의 부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국가'를 욕하는 것은 반역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을 외친다. 그 속에 나는 어디 있는가? 보이지 않는다.

■ '왜 이라크에 파병하느냐, 이라크에서 죽고 있는 사람이 5,18 대 여기서 죽은 사람들과 뭐가 다르냐......' 하는 식의 비판적 이야기가 나와야 5,18정신이 살아 있는 것이다.

나 : 그런데, 5.18 정신이 썩어간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 단체나 바르게 살기 단체처럼 정부 보조에 눈이 멀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학교에서조차도 5,18을 정확히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어떤 독일인에게 "내가 독일어를 잘 몰라서 미안합니다"라고 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뇨, 내가 한국어를 몰라서 미안합니다" 사실은 그렇죠.

나 : 서로 미안해야할 일을 왜 우리는 미국이나 영어 앞에서 굽신거리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것에 대한 경멸, 조상이나 부모에 대한 부끄러움. 스스로에 대한 불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떳떳함과 당당함인데....... 겸손과 복종이 언제나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 말과 현실이 따로 노는 것, 이게 바로 우리의 문제다.

나 : 그리도 그런 현실은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기라고 있는 것이라며. 말은 말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며.

■ 듣지 않고 말만하는 철학, 설교하는 철학이야말로 철학의 파탄이다.

나 : 그래서 설교만 하는 한국 종교도 파탄난 것이다. 목사는 더 이상 신도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교사가 학생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세계최고다. 그러므로 교회는 철학이 없다. 철학이 없으므로 자유롭게 현실에 맞게 사람들의 텅빈 곳을 건드려 준다.

■ 인간이 참된 신을 잃고 나면 뭐든지 신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나 : 돈도 신이 되고, 기술도 신이 되고, 박정희도 신이 되고......

■ 명확한 이해나 진단 없이 눈이 보이는 현실만 뜯어고치려는 사회과학주의는 분명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나 : 명확한 이해나 진단을 하면 그것으로 족한지 모를 일이다. 사회과학의 한계는 그것이 서구의 철학이라, 우리와는 맞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사회과학이 만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기가 어디냐고.

■ 어떤 철학, 어떤 이론도 하나의 깃발을 들고 사회를 변혁할 수는 없다.

나 : 그런데, 우리는 조선의 유교이후, 제대로 된 하나의 철학이나 이론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사회 변혁은 철학이나 이론이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다.

■ 학자는 (함께) 우는 사람입니다.

나 : 학자가 울면,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가는 뭐란 말인가? 학자는 제일 나중에 우는 사람이다.

■ '글을 쓸 때 피로 쓰라'고 했는데, 저는 그 말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피와 함께 눈물로 써야 하니까요. 피의 치열함과 눈물의 정화가 없으면 글이 아니다.

나 : 눈물 흘릴 일들이 점점 적어진다. 나는 정화되지 않고 매일매일 살아간다. 그래서 제일 겁나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 여유가 없더라도 나눠야한다고, 그것도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혀 관계없는 타인과도.......

나 : 아니,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 있는가? 나와 관계없는 사람은 '나'일뿐,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나와 관계하고 있다.

■ 좋은 자리든 아니든 자기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늘 떠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나 : 떠날 때를 알고 스스로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인간의 삶에는 그러한 일상성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어떻게 그것과 마주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 초월! 대결! 내게는 너무 무거울 뿐이다.

■ 외국을 착취해서 좀 남으면 이 나라의 기업이 자기 노동자를 살찌우고 이 나라의 일반 민중들을 위해서 혜택을 돌리나요? 안 돌립니다.

나 : 이건희는 과연 삼성의 노동자들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소모품? 기계? 동물? 궁금하다.

■ 모든 사람이 군대 안 갔다 온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면서도 자기가 안 갈 수만 있으면 누구도 안 가고자 하는 게 이 나라예요.

나 : 그래 맞다. 내가 하는 비난은 모두 나를 향한 비난임을 잊지 말자.

■ 예전에 멕시코에 다녀와서, 그쪽 사람들에게 정말 매혹되었는데요. 까닭이 뭔지 아세요? 그네들은 우리보다 대개 더 가난한데도 얼굴이 훨씬 더 온유하고 평화롭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인들의 얼굴과 표정을 좀 보세요. 제 어머니가 저를 보고는 '쥐어짠 빨래' 같답니다.

나 : 웃는 사람을 보면 실없다고 말한다. 어릴 적 사진을 찍을 때마다 주먹쥔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긴장해야했다. 학교에서도 웃으면 실없는 녀석이라고 한 대씩 맞았다. 나는 쥐어짠 빨래보다 더한 '인상파'다.

■ 진리는 슬픔 속에 있다.

나 : 진리는 슬픔을 너머 선 곳에 있다. 말장난이다. 철학은 말장난이 아닌 삶의 모습을 해야한다.

■ 남에 대한 격분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 : 자신에 대한 슬픔을 느낄 시간이 없다. 세상이 나를 너무 바쁘게 한다. 격분도 슬픔도 초월할 수는 없을까?

■ 저항해본 사람만이 역지사지할 수 있습니다.

나 : 저항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생기는가? 스스로 만드는 저항에 대한 힘을 점점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 먼저 나에게 이유를 돌려야 합니다. 그렇게 물을 줄 알 때만 내가 남의 작용에 기대지 않고 나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죠.

나 : 옳은 말이다. 나에게 이유를 돌리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 작다. 하염없이 작아져만 보이는 나의 존재를 어떻게 숙성시킬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 자본주의의 속성은 외면상 '경쟁의 자유, 기회의 평등'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차별의 체제라는 것이죠. 자본주의 삶의 방식에는 노예를 필요로 한다. 내부 식민지.

나 : 그들이 곧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정작 비정규직 스스로 노예라는 인식을 갖지 않게 만드는 것이 또한 자본의 괴력이다. 이렇게 자본은 '나'를 둘러싼 사회의 구조를 볼 수 없게 만드는 영악함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 민족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 주어지는 보편성인데, 거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나 : 민족을 넘으면 무엇이 있을까? '인간' 아닐까?

■ '당신이 믿는 종교 밖에도 구원이나 해탈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물었을 때, '녜'라고 대답하면 교양인이고, '아니'라고 대답하면 몰상식한 겁니다.

나 : 나는 '녜'도 아니고 '아니'도 아니다. 나는 무신론자다. 구원이나 해탈도 받아들이기가 왠지 거북하다.

■ 참된 절대자는 오직 모든 타자성을 향해 열려 있는 만남의 지평이어야 합니다.

나 : 나는 '만남'이라 하지 않고 '관계' 또는 '관계 형성'이라 하겠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우리 모두는 관계속에 놓여 있다. 관계에 대한 바른 인식이 참이고 진리다.


이 책 '만남'의 대화에 저도 이렇게 끼어들어 얘기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책속으로 들어가 여러분의 생각도 한번 펼쳐 보세요.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독서의 새로운 발견! 저자들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와 만나는 빛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멕시코사람들에 비해 어두운 얼굴표정의 한국인. '쥐어짠 빨래'는 정말 압권이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