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같은 작가의 '챔피언 시저의 죽음'을 읽고 맘에 들어서 바로 '독사'를 구입했었는데 이건 또 전혀 마음에 안들어서 즉시 책을 처분하는 동시에 머리에서 그 내용도 몰아내 버린 적이 있었다. 이번엔 작가의 최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이었으므로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흐뭇하게 뒤로 기대어 있는 느낌, 바로 이것이다.네로 울프 시리즈의 특징은 탐정의 특징, 즉 130kg이 넘는 체중에 난초와 맥주를 좋아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셜록홈즈의 파이프 담배, 포와로의 콧수염 등은 유명하지만 작품에서 이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그저 작가가 묘사해 주면 그런가 하고 넘어갈 뿐인데 이 네로 울프는 이 뚱뚱보가 바지를 어떻게 입고 벗으며 작은 의자에 어떻게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를 갖다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상상하며 웃음짓게 만든다.늘 나오는 아치 굿윈과 울프의 대화도 재미있지만 이번에는 명요리장 중의 한사람인 헬로메 벨린과 울프의 대화가 더 재미있었다. 벨린이 살인동기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할 때의 묘사는 너무 재미있어서 다 읽은 다음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볼 정도였다. 복잡한 요리 이야기야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받은 것은 그 시대로서는 당연했을 흑인에 대한 지독한 차별이다. 보안관과 검사가 하도 흑인을 업신여기는 발언을 계속해대는 바람에 혹시 흑인의 증언은 법정에서 인정되지도 않는 것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이에 대한 울프의 태도도 관대한 '백인'의 자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말 잘듣는 흑인이야 그렇게 봐주지만 만약 반항적인 '말콤 엑스' 같은 인물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은 추리소설이지 사회비평소설이 아니니 할 수 없는 일이다.트릭이나 전개에서는 별로 불만이 없다. 다만 범인이 등장빈도가 좀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의외성 면에서는 괜찮지만. 별 다섯개를 주어도 괜찮겠지만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 번역투 등이 마음에 안들어서 네개를 주었다. 별 네개 반 정도면 적당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