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상당한 고민거리를 제시해주는 이 작품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라는 헤르만 코흐의 『디너』라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인들은 저녁에 외식을 하면 정찬으로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아페리티프부터 시작해서 디저트까지 참 배부르지 못한
저녁을 매너있게 또는 고급스럽게 먹는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상호간의 친목도모나
삶의 협상(?) 등을 한다. 쉽게 말해 우리와는 달리 서양인들은
식사시간을 무지하게 오랫동안 가진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최소 2시간 이상이란다.
그래서 자리값이 상당히 비쌀 수 밖에 없다.

이 작품도 그런 이야기이다. 
형제지간에 고급레스토랑을 예약해서 식사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아이' 라는 심각한 주제가 숨어있다.

소설은 디너라는 저녁시간의 순서적 행위를 따라간다.
스테이크 나오기전에 와인으로 입가심하고 야채나 간단한 음식부터
식욕을 자극시켜준 다음 메인요리가 나오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달콤한 후식을 즐긴 후 계산하고 집에 가는 이야기이다.
그 식사시간중에 벌어지는 과거와 현재, 주위의 상황적 묘사와
심리적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파울 로만이라는 남자이다.
그리고 아내 끌레르가 있고, 이 이야기의 의도적 중심이 되는 대상인
세르게 로만이라는 파울의 형이 나온다. 이 형은 차기 네덜란드의
수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 바베테가
나온다. 이들의 식사와 그들의 이야기와 주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인데, 중심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 이다.

이 형제들에게는 아들들이 있다.
파울에게는 미헬이 있고, 세르게에게는 릭이라는 아들이 있다.
그리고 세르게의 가족은 아프리카에서 입양한 베아우라는 
아이도 있다. 
이 아이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특히 릭과 미헬이 벌여놓은 사건이
어른들의 디너시간의 주제인 것이다. 심각한 사건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사건에 어떤 식으로 개입을 할 것인가를
저녁을 먹으면서 상의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아주 충격적이다.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 불가능한 결론이다.
작가의 의도한 부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역시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그들의 선택이었다.

좀 이해가 가지 않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처음부터 넌지시 소설의 주제적 의도를 내비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의 중심은 중후반에 나온다.
중간중간 뭔가 벌어진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문제점을
제시해놓긴 하지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저녁식사 시간에
조금은 예민하고 뭔가 일반적이기 못한 감성을 소유한
파울이라는 남자의 상황적 심리와 감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하나의 상황이 등장하면 이에 따른 곁가지적인 부수적 상황이
등장하는 것. 쉽게 말하면 와인이 나오면 와인에 대한 개인적 심리를
중심으로 와인에 얽힌 과거나 주변 상황을 하나하나 묘사하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재미는 있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도대체 이 이야기의 주제를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곁가지를 드러내야하는지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간한다.
그러니까 한 두시간정도의 식사시간을 하는동안 우리가 보는 모습은
두 형제와 관련된 수십년치의 과거의 모습과 식당 주변 인물과
상황의 묘사인 것이다.

이런 서술적 상황묘사들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사적 구성의 이야기의 형태를 좋아라하는지라
다가서기가 좀 어렵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결국 '이 소설의 중심은 자신의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이에 대응하는 부모의 반응과 부모로서의 아이에 대한 해결방식이
무엇보다도 당신이라면, 당신의 아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라는 것이다.
이에 작가는 보다 극단적이면서 충격적인 형태의 해결방법을
제시해놓고 있다. 일반적인 도덕적 관념과 사회적 행위의
기준선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누구나가 이렇게 행동할 소지가
다분한 결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마치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너희들이라면 이렇게 안 할 자신이 있느냐' 라고 물어보는 듯 하다.
그것이 전 짜증났다. 물론 이러한 결말이 이 작품의 주제에
맞닿은 아주 좋은 구성의 방법임에는 부인할 필요가 없다.
충격적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에게 더 가혹할 만한
사회적 딜레마의 문제 제기를 보여준다는 점도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독자는 작품에 공감하고 자신을 대입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짜증스럽고 황망스러운 해결방식은 
상당한 후유증을 남긴다.

전반적으로 이 소설의 구성이 별로였다.
작가의 이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파악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처음의 진행방식이 빠르게 지루해졌고,
실질적 주제인 아이의 행위에 대한 부모의 역할론에 대한 이야기도
결과적으로 작가는 독자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충격적 방법을
제시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감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로 인해 더욱 더 아무렇지도 않게
사회인으로서 삶속에서의 룰에 맞춰 살아온 일반인들의 행동이
오히여 바보스러워 보인다고나 할까,
괜한 반감을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 충격은 아니라는 것.

이런 모든 감정을 차지하고라도 이 헤르만 코흐라는 작가의
문장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문장 하나하나만 두고 볼 때
이 작가의 대중적 공감을 끌어내는 일반적 감정선을 표현한
묘사의 방식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누구나가 한번씩은 겪어봄직한 그런 감정적 묘사와
상황적 심리를 있는 그대로 끌어주니까 말이다.
그게 너무 과하게 다가오니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시점까지는 와, 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작품을 읽어본 바가 없기 때문에, 이 한 작품으로 작가를
평하기는 어려움이 있지만, 이런 문장적 공감의 역량에
서사적 이야기의 긴박감을 잘 조율한 작품이 있다면 정말 대박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감정적 통찰력이라 할까,
이런 느낌이 대단한 작가임에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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