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의 순간들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이정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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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이 무엇일까, 이 작가는. 그게 내 첫 생각이었다.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저서가 꽤 여럿 나오는데, 어떤 책은 재즈에 대해, 어떤 책은 사진에 대해 쓴 책이며 심지어 직접 쓴 소설도 있다. ‘이 작가가 주로 쓰는 주제’를 파악해보려 했으나 그런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제프 다이어라는 작가의 매력인 듯 하다. 살면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책도 쓸까 말까인데, 이 사람은 세상의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고 또 그 관심의 깊이와 수준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읽은 책은 그 중에서도 작가가 사진을 소위 ‘덕질’하는 책인데, 책의 첫 부분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특정한 사진가들 간의 차이점에 대해 배우고 싶고 적어도 그 차이에 민감해지고 싶으며, 사진가들의 스타일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다. 스타일이 내용 안에서 드러나는지, 혹은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면 그 내용에 의해 드러나는지도 알고 싶다. 이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얼마나 다르게 찍었는지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정작 본인은 카메라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사진가들을 조금 더 이해해보기 위해 사진들을 들여다보다가 어쩌면 그 사진을 찍은 사진가보다 그 사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그런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낯선 이름들이 반복되어서 책의 초반부에는 사람마다 이름을 적어가면서 읽었다. 워커 에번스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고, 제임스 조이스는 시인이구나… 헨리 제임스는 소설가이자 비평가이고, 월트 휘트먼은 19세기 시인이구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프랑스의 사진 작가이구나…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꾸 시인들이 등장하는게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시를 쓴다는 것이 사진을 한장 찍는 것과 같다고, 어떤 한 장면을 콕 집어 사진을 찍듯 글로 표현한 것이 시라고, 그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와 사진, 시인과 사진가는 그런 점에서 닮아있겠구나-

작가는 그 함축된 이미지를 다시 언어로 서술한다. 그 이야기는 사진가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해석일 수도 있겠다. 다른 비평가들과 제프 다이어가 차별화되는 지점도 사실 모른다. 사진에 대해서는 하나도 아는게 없는 나에게는 그저, 이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많은 것을 통찰하고 해석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의 배경지식과 아이디어, 표현력이 놀라웠다.

이야기는 챕터 구분도 없이 주-욱 이어진다. 챕터 원, 시각장애인. 챕터 투, 울타리. 그런 식으로 사진의 주제가 챕터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읽기가 더 수월했을 수도 있겠다고 처음엔 생각했다. 하지만 마치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고 이리 저리 앵글을 잡아보다가 어떤 장면을 찰칵-하고 찍어내듯, 작가의 시선과 의식이 닿는 곳에서 또 자연스럽게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형태가 책의 주제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독서경험이었다. 사진학교에서 교과서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은 엄중함을 갖춘 책이면서, 동시에 침대에 누워서 읽기도 괜찮은 책이었달까. 익숙한 주제도, 형태도 아니었지만 작가의 매력과 통찰이 돋보였던 신선한 이야기다.

📸 사진가의 관점에서 보면 창문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는 것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세상에 속할 수 있는 방법이다.

📸 문맹에도 시가 있다면 저속함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 보이고 싶지 않은 갈망을 가진 사진가는 필연적으로 보지 못하는 피사체를 찍게된다. 따라서 수많은 사진가가 시각 장애인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 이 매체의 원리가 그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reading_d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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