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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평점 :
무척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들이 멀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사실 좋아하는 게 맞는 것인지, 그런 ‘척’ 있는지조차 분명하지도 않다. 게다가 자주 바뀐다. 드라마가 시작하고 끝나는 것에 따라서. 그리고 이런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잖아.”
그렇지만 순간의 공허를 감출 수가 없다. 이토록 열렬한 사랑을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진짜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감정이니까?
11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취하는 행동―말이 많아지고 늘 반쯤은 공상에 잠긴 그 상태를 이해하면서도 우리의 수다스러움은 참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일수록 더 절실하다는 걸 알면서요. 원래 타인의 사랑은 웃음거리가 되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거기에 더해 비난의 대상이 돼요. 단지 특수 직업군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말예요. (……) 방송국 앞에서, 사람들이 경멸에 찬 눈으로 보거나 욕을 하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생각합니다. 당신은 평생 이 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지 못할 거야, 라구요.
23-24 (……) 사람들은 소중한 것일수록 기록을 통해 남기려고 하죠. 그러나 어떤 기록도 순간의 모방일 수밖에 없다면 도대체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남겨져야 합니까?
26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끔은 나도 어떤 순간을 기록하려 합니다. 사진을 모으고, 때로는 글도 쓰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다는 걸 알고 있고, 내가 그걸 안다는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만일 내가 어떤 순간을 기록했는데 그것이 매우 정확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면, 그때가 나의 사랑이 떠나는 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38 (……) 그러나 내가 느낀 것은 뭔가, ‘뭔가’가 부족하다는 데서 오는 갈증과—심지어는—부당함이었다. 예를 들어 ‘아름답다’는 표현은 이미 수백 년 동안 ‘아름다운 것’을 위해 봉사한 언어였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 점, 이미 많은 이들이 가장 정확하다고 판단하여 사용한 탓에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이가 상대방을 수식하기에는 너무 닳아버린 언어였다.
70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어째서 나는 사랑하길 포기한 걸까. 기다림에 지쳐서? 아니다. 나는 기다림이 좋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기다림이었으므로 그것은 언제나 달콤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나는 그들을 알게 된 이후 매 순간이 기다림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문장을 쓰며 그 순간을 간신히 버티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고통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포기했던 걸까?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고통이 좋았고, 어떤 면에선 그것을 자발적으로 원한 사람이었다. 불확실한 고통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보다 낫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86 (……) 저는 열아홉이 좋아요. 정말 제일 아름다워. 나도 그 나이를 지나왔고, 그 나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도 그래요. 피부는 더럽고, 생각은 많고 몸은 무겁고. 우울해서 움직이기 싫고, 안 움직이니까 우울해지고. 그때만큼 볼품없는 때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민규를 보면, 아, 쟤는 정말 찬란한 순간을 통과하고 있구나. 너무 찬란해서 저 스스로는 눈멀어 보지 못하는 순간을 지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141-142 (……) 나는 그들로 인해 기록하는 것이 나의, 아니 망각하는 모든 인간이 해야 할 저항이라는 걸 알았고, 설령 망각에 패배하더라도 우리의 의무라는 걸 알았거든요. 또 복잡한 세상에서 한 아이돌 그룹의 한철과 그 시절 팬의 일상은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기록해야 한다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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