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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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에서부터 카운트다운이 된다. 처음에는 숫자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읽다보니 하나씩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시작은 이러하다.


 

그게 온다고 한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끝까지 보다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나름대로 ‘그것’에 대한 정의를 이미 내렸다. 상당히 잔잔한 재난 소설이다. 사건이 난무하지도 않고, 두 사람은 그저 일상을 살아간다. 이들이 사랑하는 방식이 무척 따뜻하다. 차가운 도시와 대비된다. ‘회색인’이 등장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그들이 무엇을 따라가는데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더욱 좋았다. 사람은 이러한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항상 무언가를 따라 가니까. 쫓겨서 가든 스스로 가든…….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작가가 이 분이라는 것을 소개글을 보면서 깨달았다. 역시 작품이 마음에 든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

174

사람이란 결국 해결로 태어나 해골이랑 살다 해골을 간직하며 죽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삶이라는 얇고 불안한 표피를 덧입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93 미국 드라마 「환상특급」

내게 마법의 목걸이가 있다면 그 움직임만은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들의 불안이 아니라 그들의 불안을 지켜봐야만 하는 나의 불안을 위해서.

151

"그때의 연애는 ‘작가의 말’을 읽지 않고 덮어 버린 소설책 같았어요."

152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의 끝은 뭘까요?"

흘러넘치는 촛농을 보며 내가 물었다.

"……"

"이별일까요?"

"아니요."

"결혼일까요?"

"아니요."

"그럼요?"

"상대방을 위해 죽어도 좋은 거요."

"죽어도 좋은 것."

"네, 그거요."

166

그것은 떠난 자보다 남겨진 자가 크게 느끼게 되는 부재의 병폐였다.

173

우리는 최소한 ‘도망갈 데’가 서로에게는 있는 것이다.

180

"……옷을 볼 때마다 내가 꿰매 준 거란 걸 잊지 말아 달라고요."

"네?"

"그러니까 눈에 자꾸 거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날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셔츠를 보고 단추가 떨어졌었나 봐요? 하고 물으면 내가 생각날 거고, 스웨터 어깨선을 보고 맞는 실이 없었나 봐요? 하고 사람들이 놀리면 내 존재를 잠깐이라도 떠올리지 않을까……"

202

"나, 나랑, 여, 연애, 하, 할래요?"

대답한 건 엉뚱하게도 그 옆에 앉아 있던 반이었다.

"멍, 멍."

하고.

221

"세상에는 굳이 안 물어도 아는 게 있어요. 그리고 누구에게나 지나간 사람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리운 사람이든 증오하는 사람이든."

224

동물이 아리기만 한 건 사람과 달리 상처를 줘도 모진 말을 할 줄 몰라서다.

"미안해할 일이 있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왜요?"

"그런 게 있어야 애틋해지잖아요. 하나도 없다면 생각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을 거예요. 더 이상 빚진 게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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