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소년 1
이정명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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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의문의 숫자. 그리고 한 남자가 있다. 모든 사실은 그를 살인범으로 몰아가고 그는 일급 범죄자다. 그런데 그는 마치 범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과거와 현실이 교차하면서 그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 소설은 술술 읽힌다. 마치 직접 보고 듣고 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 눈앞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수학 올림피아드, 아버지, 예수, 수용소, 중국……. 그는 머릿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가 지켜주고자 했던 ‘영애’는 더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저씨의 부탁으로 지켜주겠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그녀.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그녀는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을 끝으로 1권의 내용은 끝이 난다.


전작 <별을 스치는 바람>에서도 느꼈지만 단어 하나하나로 만들어지는 문장의 어감이 정말 좋다. 특히 <별을 스치는 바람>에서는 밑줄 그은 것만 해도 무수히 많다. 이것이 진정한 넘실거리는 문장의 향연이다. 게다가 거기에서는 ‘책’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이번에는 수학이 주를 이루지만 이것 또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별반 다르지 않다. 수학과 그리 친하지 못해서 내용이 어렵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드라마 '굿 닥터'의 주원이 생각나기도 하고, 영화 '내 이름의 칸'의 칸이 생각나기도 하는 묘한 소설. 이 순수하고 뛰어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범인은 누굴까. 궁금한 것이 한 가득이다. 얼른 2권을 봐야겠다.

 

밑줄 긋기

118

“그들은 누구를 위해 우는 걸까요?”

“그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울고 있단다.”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울어요. 남겨진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132-133

아내와 딸을 위해 처벌이 기다리는 공화국으로 돌아온 아저씨는 바보였을까? 아니, 그는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왜 바보짓을 했을까?

“때론 지는 것이 뻔한 게임을 해야 할 때도 있단다.”

“왜죠?”

지는 것이 옳기 때문이지. 세상은 이기는 것으로만 완전해지지 않으니까.

 

134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건 언제까지나 그 뒤를 따르며 지켜봐주는 거야.

 

182-189

꽃제비는 꽃 이름이 아니다. 새 이름도 아니다. 공화국에서는 우리 같은 아이들을 꽃제비라 불렀다. 거리와 장마당을 헤매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 상한 음식을 주워 먹거나 풀을 뜯어 먹고 구걸을 하거나 음식물을 훔치는 아이들. 수많은 위험 속에 살지만 위험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배고픔 때문에 독풀을 뜯어 먹다 죽고 도둑질을 하다 맞아 죽는 아이들.

“꽃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새처럼 자유롭지도 않은데 왜 사람들은 우릴 꽃제비라 부를까?”

날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꽃처럼 연약하고 새처럼 온순하니까.

 

191

나는 생각했다. 죽지 않았으면 끝장이란 없는 거야. 우리는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전원을 켜고 깜빡거리며 살아갈 테니까. 빛을 따라 휘어지고 접히는 우주의 한 점에서 시간과 공간이 만나듯 우리는 다시 만날 거니까.

 

209

“아름다움은 아름답지 않은 것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는지 몰라.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결국은 아름다움을 완성하니까. 그러니 과거가 어떻든 우리는 아름다운 존재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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