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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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얘기하고 싶었던 건 바로 표지였다. 표지가 정말 특이하다! 요근래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이렇게 독특한 표지는 처음이다. 소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무 느낌이 난다. 가죽은 아니고. 그래서 만졌을 때 촉감이 좋다. 지하철처럼 흔들리는 곳에서 읽어도 손에서 안미끄러지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표지에 작가들의 이름이랑 단편들의 이름이 남자 여자의 그림으로 모여지는 것도 소소한 장점. 저걸 뭐라그러지? 타이포그라피라고 하던가....... 하여튼 표지가 너무 이쁘고 들고 다니면서 읽기 딱 좋다.





서문을 읽으면 뭔가 대학교 강의 계획서 느낌이 난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현대문학 특강' 수업을 하면서 단편 열 편씩을 골라주고 각자 찾아보게 한 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 한 편씩을 골라 독후감을 작성하게 하셨다고 한다. 헣허헣.

그래도 작가가 되고 싶은 학생들과 사람들을 위해서 이렇게 도움이 될 만한 글을 모으셨다고 하니, 소설 등단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교과서같은 책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장편보다 단편소설이 더 쓰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편 소설은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 있어야 하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점이 제일 고통스럽지만) 단편은 군더더기가 없어야 하기 때문. 나는 옆에 주저리주저리 해야 할 말이 많아서 단편 쓰는 게 고통스럽다. 고등학생 때를 되돌아보면 몇 시간 내에 써서 제출해야 하는 백일장은 그렇게 많이 나갔는데도 하나밖에 받지 못했으니까. 대신 중편정도 분량의 글은 공모전에 냈을 때 일단, 1차로 통과한 건 그보다 많았으니 단편보단 중편이 더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내가 읽는 소설도 단편집보다는 장편이 더 많다. 너무 짧게 끝나버리면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하지만 글을 읽고 분석하고 내가 따라할 수 있을 만큼 필사를 해볼 땐 단편만큼 좋은 교재도 없다. 강의를 들었던 학생분들은 힘들었겠지만 얻는 게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길 바라요. 허헣

특히 이 단편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음' 에 관한 단편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그것도 나중에 찾아 볼 예정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다고 해서 반짝반짝하고 고결하고 예쁜 사랑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가장 맘에 들었던 '다니자키 준이치로' 라는 작가의 <슌킨 이야기>라는 단편이다. 일본의 19, 20세기 때 살았던 남자 작가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 슌킨이 꽤 특이하고 뾰족하다. 그리고 남자주인공(?) 사스케도. 사스케는 사실 남자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변두리같은 느낌이 들지만....... 슌킨과 사스케는 맹인 여주인과 하나부터 열까지 슌킨을 돕고 모시는 남종임과 동시에 어린 스승(슌킨)과 연상의 제자(사스케)이다. 하지만 뭔가 연인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까지 하나가 아닌데도. 심지어 슌킨은 사스케의 아이라는 걸 밝히지 않고 오히려 치욕스럽게 느낀다. 아이에 대한 애정도 없다. 세상에는 슌킨,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슌킨을 보면서 사스케는 단 한 번도 앓는 소리 없이 시중을 든다. 심지어 냉기가 도는 슌킨의 발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서 입에 병이 나도 평소처럼 볼을 내어준다. 그러다가 슌킨이 네 놈이 아픈 걸 진작에 알았다고 혼내긴 하지만 그것도 '니 고통을 내 차가운 발로 진정시키려고 해?!' 하면서 툴툴거린다.

심지어 나중에 사스케는 맹인 슌킨을 따라 본인의 눈을 찔러서 맹인이 되는데 이 이유도 참... 이것까지 말하면 단편 소설의 모든걸 다 알리는 스포라 말하지는 못한다. 하여튼 참 대단한 캐릭터다.

읽고나서 어쩌면 이건 도미넌트(지배자)와 서브미시브(복종하는 자)의 관계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주종관계이기도 하고. 사실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 드는 역할(?)이기도 하고 좋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이문열 작가는 이것도 사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사랑의 비참함이나 허무함을 다룬 단편들도 있지만 알퐁스 도데의 유명한 단편 <별>처럼 예쁜 사랑도 있다. 가장 짧지만 너무 임팩트 있는 단편ㅠㅠ 정말 오랜만에 읽었는데 문장들이 참 예쁘다.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별처럼 반짝반짝하다.

'사랑' 편과 함께 '죽음' 편도 있던데 그것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모르는 단편들이 많아서 좋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후 70년이 지나' 올린다는 말들도ㅋㅋㅋ 저작권을 철저하게 준수하시는 이문열 작가님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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