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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한시절 내 옆에 있던 당신들에게 ....”
진주라는 도시를 참 좋아한다.
나에게 진주는
허수경시인의 도시이기도 하고 박경리선생님의 <토지>에 나오는 쓸쓸했던 양현이 생각나는 도시이기도 하다.
진주를 생각하면
허수경 시인의 시에 나오는 어떤 여인의 외로움이 생각나기도 하고,
진주남강을 바라보며 울먹이고 앉아 있던 양현이의 쓸쓸한 모습을 얼핏 보고 고개를 돌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진주는 나에겐 조금 슬픈 느낌의 도시이다.
오래전 진주를 처음 가보았을때
그때는 늦여름이었고, 함께 갔던 친구와 우리는 조금은 더웠던 진주성을 천천히 걸었었다.
걷다가 앉다가 그 안에 있던 박물관을 둘러보고 진주 남강이 보이는 어디가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논개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얼핏듣기도했고 진주라는 소도시가 마음에 든다고도 이야기했었다.
나는 아직도 유등축제의 활기찬 진주 보다는
고즈넉하고 한적해서 문득 쓸쓸하던 한낮의 진주가 더 좋다.
그때 그 친구가 그리울때면 진주에서 우리와 그날의 여름을 떠올린다. 조용하고 간간히 바람이 불던 진주 남강의 벤치와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나는 기분이 따뜻하면서도 조금 쓸쓸해진다.
이 책은 내가 진주를 떠올릴때 드는 생각과 조금은 닮아서 그러나 한 가족의 이야기가 너무 아파서 슬펐던 책이었다.
어쩌면 헛된 감상에 빠져 난 이 도시에도 교도소가 있다는 생각을 나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었다.
이 도시에 나오는 아버지의 삶을 읽어내려 가는 것은 힘겨웠고 가족의 삶은 아팠다.
삶과 이상 사이에서 그 둘이 다를때 삶을 등지고 이상을 추구하는 행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기에
삶이 얼마나 인정사정없이 팍팍한지 알기에,
올바른 세상을 위해 싸우는 그들의 삶이
지금도 여전히 힘들다는 것도 알기에
그 힘듦을 제대로 바라보는게 힘겨워
제대로 알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 힘겹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팍팍하고 힘들때 그때 어렸던 청춘의 시절의 진주를 몰래 떠올리고 현실의 힘듦을 잠시 잊곤 했는데 이젠 장혜령의 <진주>를 읽었으니,
그럴수 없게 될것 같아서 처음엔 책을 그만 읽을까 고민도 했다.
이제 진주! 라고 하면 내가 앉아있던 남강변의 벤치의 우리만 떠오르는게 아니라 엄마 손을 잡고 아빠 면회를 가는 여자 아이가 떠오를것이고 그리고 그 가족의 힘겨운 삶이 생각날 것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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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언제나 나를 붙잡는다.
나는 아빠처럼 옷깃이 뒤집힌 셔츠를 그런 줄도 모른채 입고 다니고 아빠처럼 현관 문턱에서 서서 급하게 구두를 고쳐 신으며. 아빠처럼엄마를 통해서만 이야기하고 아빠처럼 잘못된 일들과 잘못된 관행에 분노한다.
그러나 나는 아빠처럼 그렇게 분노하다가는 평생 월세살이를 전전하고야 말것임을 알고, 아빠처럼 누군가를 돕다가는 평생 새까맣게 어린 상사들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날만 올 것 임을 알고
아빠처럼 제 몫을 챙기는데 소홀하다가는 평생 연금은 커녕 죽을 때 까지 일을 구하려 다녀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아빠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것이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가난은 긍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주에 갔을때 그 시절 우리 옆에 있던 선배들이 떠오른다. 거리로 나가고, 거창하게 “혁명”이라는 구호까지를 외치던 (?) 우리들의 풋풋했던 20대가 생각난다.
여전히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도 있고,
여전히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가난하지만 보수당을 지지 하는 사람으로 변한 사람도 있고,
그때 그시절을 훈장으로 여기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사람도 있고,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서로를 직접 만나기 보다는 풍문으로 전해 듣고 사는 쓸쓸한 관계로 변한 우리들의 모습은 이 글에 나오는 누군가와도 많이 닮았다.
내가 나이가 들고 그때와 달리 변한 모습을 헤아려보는것도 힘겨웠고,
철 좀 들라고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는 누군가에게무례하게 훈수를 두는 선배를 가지게 된것도 떠올라 힘겨웠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내가 가지 못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이었고, 그 묵묵함 뒤에 조금 편안한 생활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서 일것이다.
그 간절함이 그 가족에게 가닿았을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닿았을 것이라고 조금은 믿고 싶다.
그시절 선배들을 만난다면
우리 이제 서로의 안부를 물을때
따뜻한 마음 담아 물어보기를
사는게 다르더라도 한때 행복해지기를 원했던 그 마음만 기억한 채 서로 상처를 주지말고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에게 따뜻하게 안부 물어보기를....
지금 안녕한가요?
나는 자주 휘청거리고, 여전히 이 세상이 무섭지만,
선물처럼 내 삶에는 간간히 따스한 햇빛이 들어옵니다.
간혹 시원하고 기분 좋은 바람도 부네요.
당신들도 그런 삶을 살고 있나요?
이렇게 조용히 물어보는 책을 만난 것 같아 참 좋았다.
나도 이런 안부를 물을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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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둘 수 없는 것의 안부를 묻는 일은.
...
(중략)
그 창 너머로, 오랜시간 감옥의 겨울을 견디고 지내온 나무 한 그루가 엿보입니다. 그 나무만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것이 나무의 삶이므로. 나무는 기다리는 일을, 가만히 시간을 견디는 일을. 그러니 삶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