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그러려면 지속적으로 약간의 재화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그 재화를 벌기위해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의 가난은 대책이 없었고, 문을 열면 항상 대기하고 있는 지저분한 털을 가진 개와도 같았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그림이 팔려나가는 화가가 되리라는 꿈도 기실 꾸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마음에 다짐한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러한 행위들이 남에게(부모님 포함) 피해를 주거나 없는 형편에 빚을 떠안게 되는 결과 되지는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전시회를 통해서 작품을 일정정도의 재화와 바꾸려고(그러니까 팔려고) 노력 아닌 노력을 했고, 전시회를 위해 만든 소책자 등도 당시의 관행이었던 무료 배포를 하지 않고 작은 값에라도 팔았다. 이것은 가난했던 내가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살려고 가진, 소신 아닌 소신이 되어 버렸다-40쪽
젊을 때는 내일이 올 것 같지 않게 행동한다. 오늘, 지금 당장 이 순간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생생함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실지로 젊을 때보다 생이 더 조금 남아있음에도 말이다. 오늘 하루를 벅차게 보내면 내일이 힘들것을 알기에 이내와 자제력을 갖게 된다. 모든 것에 태도가 조금씩 의식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 사람을 대하는 것, 공부를 하는 것, 사랑에 빠지는 것 등. 어쩌면 우리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다가가고 있음을 알기에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현실적 죽음이 결코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시절의 죽음은 그것조차 화려하게 느끼는 환상에 가깝기 때문이다.-1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