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삼촌 - 창비소설집
현기영 지음 / 창비 / 197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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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항쟁의 강요된 침묵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에 의해서 깨어지게 되었다. <순이 삼촌>은 4·3의 참혹상과 그 상처를 폭로해 전국적인 충격을 주었고 긴 세월 금기시 됐던 4·3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 소설은 이후 각 분야의 4·3연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현기영은 공안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소설집은 판금됐다. 이후 다시 4·3이 논의되기까지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순이 삼촌>은 1949년 1월 16일 제주도의 동쪽 마을 북촌리에서 500여명의 주민이 군인에 의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된 소위 '북촌리 사건'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거기에 작가의 고향인 노형리의 체험을 함께 섞어 가공한 사실주의 기법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군인의 양민 학살의 현장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여 그 참혹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이 학살의 와중에 극적으로 생존한 순이 삼촌의 정신이 어떻게 황폐화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지를 보여 줌으로써 4?3항쟁의 여파가 지금까지 제주도민에게 어떠한 정신적 상처를 주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대기업 부장으로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제사 때문에 제주도로 내려갔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순이삼촌의 죽음 소식을 듣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집에서 가정살림을 도와주었는데, 제주도로 다시 내려온 뒤 행방불명 뒤 자살한 것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제사를 모시고 문중어른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데, 4·3당시의 얘기를 한다. 군인에 의해 양민학살이 진행되는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 때 순이삼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지만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 그 이후 순이삼촌의 삶의 모습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신경쇠약과 결백증에 빠져 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은 왜곡되고 거짓된 역사에 저항해 진상을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순이 삼촌>은 작가가 그 동안 금기시 되어 오던 항쟁의 잔인성과 소외받고 고통받는 제주도민들의 진상을 표현하려고 한 점에서 오히려 당시의 어떤 자료보다도 민중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이후에도 작가는 계속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는 작가의 치열함과 끊질긴 의식의 소산으로 보기 드문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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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양장)
마키아벨리 지음, 이상두 옮김 / 범우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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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역사적인 변동기였다. 유럽 열강의 위협과 침략 앞에 굴종과 멸시를 강요당하던 이탈리아는 피렌체 공화국,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령, 나폴리 왕국 등을 비롯한 수많은 군소 국가로 분열되어 서로 대립하였고, 외세와 결탁하여 동족간에 싸움을 벌이는 현실 앞에서 마키아벨리가 바랬던 것은 이탈리아의 통일이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했기에 그는 체자레 보르지아와 같은 강력한 군주의 출현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했기에 <군주론>의 내용이 국가의 성격과 종류, 영토의 획득과 유지, 군대의 종류와 각 장단점, 군주의 덕목 등에 대해 자세하고도 깊은 성찰에 주력했음을 물론이다.

그가 혁신적이었던 것은 당시 피렌체의 외교가이자 사상가로서 현실정치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관여하고 있으면서 남다른 재능을 보이고 있었던 데 기인한다. 그는 신군주가 어떻게 하면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 있는지 깊게 고찰하면서, 분열된 이탈리아가 하루빨리 강력한 통일 이탈리아로 거듭나기를 열망하였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역사가 파스과레 비과리는 그의 저서 <마키아벨리와 그의 시대>에서 '마키아벨리의 과제는 조국 통일과 외국 세력으로부터의 해방 그것이었다. 더욱이 이 과제는 선천적인 군주에 의해서만 성취되어질 사업인 것이다. 또 이것은 역사와 경험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방법에 의해서만 달성되는 것'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군주론>은 출간 당시부터 '악마의 소산'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정치사상을 주장한다는 반박을 듣는다. 하지만 그야말로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과 해방을 간절히 꿈꾼 애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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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3
서정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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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의 초기작은 현실세계에 대한 환멸과 냉소가 주조를 이룬다. 그 중에서 <강>은 서정인 초기 소설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일상적 삶의 질곡과 냉소, 상처와 연민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다.

강은 흘러가는 것이므로, 여행을 상기하시키지 않습니까. 우리의 살림살이도 그렇게 흘러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강'이란 제목은 그런 우의적인 뜻을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강'을 쓸 때 저 자신도 젊은 세대였던지라 급하고 과격했어요. 자연히 당시의 사회 현실을 답답해했지요. '강'을 지배하는 우울한 분위기는 그렇게 좌절했던 세대의 심경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요.(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소설 속에서 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이라는 제목에서 쉽게 연상 할 수 있는 것은 단절감이다. 타인과 소통하는 길을 잃어버리고, 진실은 가려져 있고, 현실과 꿈은 괴리되어 있고... 사회 속에서 고립되고 단절되어 파편화 되어버린 개인의 삶과 진실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어디로 흘러가는 지도 모르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는 시작부분과, 대학생 김씨가 잠들어 있는 여인숙으로 걸어갈 때 술집작부가 함박눈을 맞는 마지막 부분은 소설 전체를 원형적인 구조로 만들고 있다. 이는 끊임없이 흐르지만 결국에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강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으며, 쳇바퀴 돌 듯 하루 하루의 삶에 안주하는 소시민적 태도와도 연관된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은 그 속에 신비한 것을 숨기고 있을지 모를 환상을 심어주게 마련이지만, 작중 상황 속의 눈은 소설적 낭만에 반발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부서져 버린 꿈과 더러운 현실의 간극에서 고뇌하지만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늙은 대학생 김씨, 현실에 안주하는 소시민적 삶의 태도에 깊이 물들어버린 전직교사 박씨, 현실에 적당히 순응하여 쾌락을 추구하는 세무서 직원 이씨, 그리고 술집작부는 모두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강은 결국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 자신 안에, 우리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일상적 삶의 환멸과 냉소,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존재로 술집작부를 내세운다. 때로는 포근한 어머니의 품안이 되고, 따뜻한 누나의 손길이 되어버린 그녀는 작가의 분신이다.

서정인은 경제 개발의 이데올로기가 광폭하게 사회를 훑고 지나간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나 반전의 효과를 노리기보다는 일상적 삶의 흐름 속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이것 또한 강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시대의 상처와 아픔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했다. 상흔 투성이다. 아직도 서정인의 <강>이 명작선에 포함되어 끊임없이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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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8
최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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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의 소설은 삶, 내지는 추억의 미세한 결을 따라 새겨진 고통과 상처, 그리움과 연민들을 울림이 강한 목소리로 어루만지는 듯하다. 개인의 사사로운 삶의 비의(秘義)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부터, 역사적 현실의 질곡에 상처받았거나 지금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내면적 정황을 드러내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내는 목소리는 다양하다.

1992년도 동인문학상 수상작이자, 문단 안팎에서 우리 단편 문학의 백미 중의 하나로 일컬어질 만큼 탄탄한 문학적 성과를 이루어 낸 「회색 눈사람」은 역사에 압도당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부서진 꿈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등단작인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에서도 보여줬던 것처럼, 그녀가 드러내는 역사적 현실은 객관적 상황의 재현이나 보고에 있지 않다. 작품의 최저에서 작동하고 있는 억압적인 상흔은 끊임없이 작중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한번도 뚜렷하게 표면에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읽었을 경우, 5·18 광주민중항쟁을 배경으로 쓰여졌다는 작품 외적 사실을 쉽사리 눈치채지 못할 정도이다. 그의 소설에서 사건의 실체는 가리워져 있는 대신, 비극적 징후의 울림이 우리의 가슴 깊이 새겨지는 이유이다.

「회색 눈사람」역시 억압적인 역사적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표면에 드러나 있지 않다. 대신 작중 상황으로부터 암울했던 7, 80년대를 연상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객관적인 현실을 정서적으로 여과해서 수용하고 있다. 역사적 현실에 대한 정서적 여과 없이 자칫 생경한 문장들의 나열에 불과할 수 있는 우려를 말끔히 지워주는 대목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우연하게 운동권에 끼어 들었던 젊은 날의 기억을 회상체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울림의 깊이만큼이나 다양하게 읽혀질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고학으로 고생스레 대학을 다니던 젊은 날의 통과 의례를 위한 기록이기도 하고, 70년대 그 엄혹한 시대의 운동권 학생들의 회억이기도 하며, 이루어지기를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던 애틋한 사랑의 아픔이기도 하고, 만남과 헤어짐의 인생 유전이 일으키는 아득한 운명의 변환을 훑는 고백이기도 하다. 역사적 억압의 상흔으로 고통받는 젊은 날의 초상을, 풍요로운 정서적 울림을 통해 다양한 의미로 변주시켜 놓고 있다. 고통마저도 아름다움으로 치환하는 능력이 바로 최윤 소설의 깊은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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