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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1
박완서 지음 / 문학사상사 / 1990년 9월
평점 :
절판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방학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어느날 문득 국어 숙제가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동네 책방에 갔더니 책방 아주머니가 단기간에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나에게 이 책을 권해주셨다. 나는 지난 번에 삼국지를 제대로 읽는데 거의 두 달이 걸렸던 것이 생각나서 선뜻 그 책을 받아들었다. 집에 돌아온 후 책을 펴고 주인공을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히 처음 읽어 보는 책인데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왠지 모르게 낯익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위에 흔한 이름도 아니어서 나는 내 기억을 잠시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선 생각난 것이 TV에서 들어 본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건 몇 년 전에 TV에서 했던 책과 같은 이름의 '미망'이라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었던 것이다. 나는 그 드라마를 계속 보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었다. 드라마 내용과 조금 달랐는데도 일단 내용은 약간 알기 때문에 그런지 그 책은 매우 흥미로웠다.
개성의 대상인인 송상을 배경으로 소설은 전개되었다. 아주 가난한 중인의 자식이었던 전 처만은 부지런히 돈을 모아 거상이 된다. 청국과 밀매등을 하면서 모은 그의 재산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그는 돈을 헤프게 쓰지 않고 항상 절약하면서 사는 인물인 것 같았다. 점점읽으면서 전처만이란 인물은 자연히 내 관심의 대상이 되어갔다. 전처만이란 인물을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는 손녀 태임이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였고 자신의 식솔이나 거느린 사람들에게는 어질은 윗사람이었지만 양반의 아들인 종상이나 다른 양반들에게는 분노와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고 멸시했다. 그런 커다란 행동의 차이가 과연 과거에 단지 양반에게 당했었던 것만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만 보고 싶지 않다. 실권을 잡고 있으면서도 외세에 대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옳은 방향으로 개화하지 못하는 깨우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을까?
사건은 태임이의 어머니인 머릿방아씨에게로 옮겨 간다. 신혼 초에 남편을 잃고 수십년을 독수공방하며 살아온 여인... 그리고 정절을 지키지 못해 태남이를 낳고 자살한 여인... 개성상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몰락한 양반들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 속에서 그녀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습에 대한 도전의 표시이다. 여자에게만 정절을 요구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사회와 남녀차별이 바탕인 사회. '남아선호사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 인습에 대한 언급은 단지 장남에게서 가문을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한 여인의 파란 만장한 삶이 그리도 무참히 짓밟힐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해 준다. 그리고 그런 인습이 폐지되야 한다는 것을 태임이에 대한 전처만의 태도와 태임이의 교육에서 살짝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나라가 망하고 태임이와 종상이에게로 시선이 옮겨진다. 우리의 상업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개성 상인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태임에게 이유도 없이 머리를 조아리게 되는 양반이자 고급 관리인 박승재가 나온다. 정말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고 더 나으면 나았지 태임이나 종상이보다 못할 바 없는 그가 왜 그리 그들 앞에서 조아리고 질투를 했을까? 질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그에게는 거의 병 같았다. 한 평생 그를 그렇게 질투와 분노 속에 묶어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그의 양심에 대한 반성이자 양심의 질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결코 박승재가 일제의 앞잡이 노릇하는 것이 옳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는 못하면서도 그래도 마지막 남은 그의 양심이 그의 일생을 잡고 늘어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