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하윤맘님의 "[퍼온글] 그림으로 알아보는 성격 테스트"

분석적이며 ( Analytic )
믿음직하며 ( Trustworthy )
자기 만족적인 ( Self-Assured ) 성격


당신의 끊임없는 감수성은 지속적이면서도 가치있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시말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작은 '보석'들에 둘러싸여 있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만의 독특한 행동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합니다.

당신은 변덕이 심한 유행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개발한 자신만의 고상한 행동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인생의 토대로 두고 있는 이상은 자신만의 행동양식에서 오는 즐거움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사귀고 있는 사람들을 문화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이 것도 바넘효과의 일종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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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젊은느티나무 > 영원한 사랑나무 연리지(連理枝)

 

맞닿은 두 나무의 세포가 서로 합쳐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연리(連理)라고 부른다.

연리는 두 몸이 한몸이 된다 하여 흔히 남녀간의 사랑에 비유되는 ‘사랑나무’이다.


숲 속의 나무들은 좁은 공간을 나눠 갖고 살아간다. 나눔의 방법이 정해진 것은 아니니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남보다 먼저 쑥쑥 키 자람을 하고, 가지와 잎을 잔뜩 펼쳐놓아야 한다.

자연히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조금의 빈 자리라도 생겼다 하면 주위의 나무들은 우선 가지부터 들이밀고 본다. 서로가 부딪치면서 맞닿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자기만 먼저 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함께 협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서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메워나갈 수 있도록 아예 몸을 합쳐 한나무가 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렇게 맞닿은 두 나무의 세포가 서로 합쳐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연리(連理)라고 부른다.


연리는 두 몸이 한몸이 된다 하여 흔히 남녀간의 사랑에 비유되며 나아가서 부모와 자식, 가족 사이, 친구 사이의 사랑까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하나로 이어진 두 나무로 형상화된다. 바로 ‘사랑나무’다.

전북 고창군 해리면 동호해수욕장의 곰솔(연리근)

전북 고창군 해리면 동호해수욕장의 곰솔(연리근)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다.

연리목은 흔히 나무를 심을 때 너무 가까이 심은 탓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 지름이 굵어진 줄기가 맞닿아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나 연리지는 매우 드물게 생긴다.

가지는 햇빛을 많이 받도록 서로 피해 뻗으니 우선 서로 맞닿을 기회가 적다.

운 좋게 맞닿았더라도 바람에 흔들리면 서로 상대방의 세포와 사귀어보고 결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한편 땅 속에선 지상보다 이런 연리현상이 보다 훨씬 흔하게 일어난다.

좁은 공간에 서로 뒤엉켜 사는 뿌리들에겐 서로 맞닿을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연리근(連理根)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지만 쓰지 않는 말이다. 베어버린 나무등걸이 몇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잘리지 않은 옆의 나무와 뿌리가 연결되어 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주변은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다.

자고 나면 업그레이드를 생각해야 하는 정보화 세상이라지만 가장 전통적이고 우리다워야 할 남녀 사이의 사랑 방식도, 가치관도 몰라볼 만큼 달라지고 있다.

혼전 동거를 다룬 ‘옥탑방 고양이’란 미니시리즈가 안방극장의 인기 프로가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사랑은 바람처럼 지나가는 유행일 뿐이다.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 대 사람의 사랑은 시대를 초월해 진정한 의미로 남을 것이다.

특히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부부의 연을 맺어 평생을 같이 하는 과정을 연리지로 승화시킨 옛 사람들의 사랑 방식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음나무연리 가로단면

                                             

 

 

             연리지로 이어지는 사랑 타령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송나라(420~479)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 채옹전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후한 말의 대학자인 채옹이란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를 하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얼마 후 채옹의 방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이어져 연리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그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세월이 한참 지나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 인용되면서부터

연리지는 남녀 사이의 변함없는 사랑의 뜻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서기 736년, 무혜왕비를 잃고 방황하던 56세의 현종은, 남도 아닌 자신의 열여덟번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제왕이 하는 일에는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한 왕조시대의 사람들이었지만, 훗날 양귀비가 된 스물두 살짜리 며느리와의 사랑 놀음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비극으로 끝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양귀비가 죽고 50여 년이 지난 서기 806년, 유명한 시인 백거이(백낙천)에 의하여 ‘장한가(長恨歌)’라는 대서사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당태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백거이가 이렇게 노래하였다.
“칠월칠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두 사람은 은밀한 약속을 하는데/ 우리가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이승에서 다시 만나면 연리지(連理枝)가 되세…”


중국의 전설에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만 있는 새다. 암수가 합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신화 속의 새이다. 연리지는 물론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 하나가 되어야 만들어지는 나무이다. 이후 수많은 중국인들의 사랑 이야기에 연리지는 단골손님이 된다.


우리 역사 속에도 일찌감치 연리가 등장한다. 남녀의 사랑에 한정시키지 않고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때로는 선비들의 우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민들 사이에선 이 나무에 빌면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는 믿음이 유행했다.

또 연리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속 연인이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바로 그 연인에게 상사병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내물왕 7년(362) 4월에 시조 묘의 나무가 연리되었으며, 고구려 양원왕 2년(546) 2월에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에도 광종 24년(973) 2월에 서울 덕서리에서 연리지가 났으며, 성종 6년(987)에 충주에서도 연리지가 생겨났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연리지의 출현을 일일이 역사책에 기록할 만큼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생각한 것이다.


고려 중기 이규보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의 고율시(古律詩)에 “그대 비록 후배라 함께 공부 안 했으나/연리지 나무처럼 한집안 형제 같네…”, “난새는 짝 잃으면 못 떠나고 방황하네/ 초목 중엔 연리지가 의좋기로 소문나니/ 꽃 마음은 한가지나 꽃답기는 다르도다/ 부부가 없다면 짝이 어찌 될 것이며/ 형제 또한 없다면 기러기가 어이 줄서 가랴…” 하며 친구 사이의 우정과 혈육의 정을 연리지에 비유했다.

또 김시습의 「금오신화」에도 “연리지 가지 끝엔 붉은 꽃/ 서러워라 내 인생 나무만도 못하구나/ 박명한 이 청춘 눈물만 고이네”라고 하여 저승에서 나누게 되는 사랑의 서러움을 연리지와 비유하고 있다.

         우리 땅에서 만난 연리지

이렇게 연리지는 나타나는 것 자체가 희귀하며 사랑의 상징으로써 옛부터 상서롭게 여겨왔다. 기록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연리지가 최근 잇달아 알려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자진해서 나타난 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는 현장을 들킨 것이다.


2001년 7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라는 운문호 옆의 작은 마을에서는 오랜만에 귀향한 몇 사람과 동네사람들이 모여 앉아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누군가가 나란히 선 소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내밀어 서로 꼭 붙잡고 있는 ‘이상한 나무’를 봤다는 얘기를 꺼냈다. 전설처럼 알려져 오던 신비스런 연리지의 진짜 모습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청도군 운문면 지존리 소나무연리지

 

 


나이가 4, 50년쯤으로 추정되는 이 연리지 소나무는 자동차 도로에서 1시간 정도 걸어올라가야 하는 깊은 산속 북쪽 비탈진 곳에 나란히 서 있다. 땅 위 약 2.6m 높이의 굵은 가지 하나가 뻗어내려와 아래쪽에 있는 나무를 꼭 잡고 있는 형상이다.

손을 내민 쪽의 소나무는 지름 한 뼘 정도이며, 한 발짝 떨어져 내민 손을 반갑게 잡고 있는 나무는 이보다 조금 작다.

마치 등산길에 나선 부부가 비탈길에서 넘어지려는 아내 손을 꼭 잡아주자, 가슴으로 손을 감싸 안고 정겹게 남편을 올려다보는 형국이다.

이 연리지나무는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온 순수 우리 소나무라는 점에서도 더욱 의미가 깊다. 조금 떨어져 보면 H자를 쏙 빼닮았다.

 

청도군 운문면 지존리 소나무연리지

                        

 


다시 2003년 5월에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에서 소나무연리지가 발견되었다.

이 나무는 나이가 120~130년쯤 되어 보이며 지름은 한아름이나 된다. 땅 위 5.5m 높이에서 굵은 가지가 나와 서로 이어져 있다.

마을 뒷산 자락에 모여 자라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 중 약간 구불구불한 나무 두 그루가 가까이서 서로 마주 보면서 다리를 놓듯이 하였다. 연리지 나무의 바로 옆에는 줄기의 밑동이 서로 붙어버린 연리목도 함께 있어서 두 나무가 한몸이 되는 과정의 모두를 볼 수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의 소나무연리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는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사랑나무라 부르는 동백나무 연리지가 있다. 마을 뒤 천연기념물 136호 상록수림 안에 자란다. 나이는 100년에서 120년 정도로 보이며 지름이 한 뼘이 채 안된다.

높이 2.5m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옆 나무와 이어져 있다. 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로는 자신들이 어릴 적부터 서로 붙어 있었다니 아마 태어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천생연분 나무로 보인다. 동백나무는 핏빛 꽃잎과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섬뜩함 때문에 흔히 비극적인 사랑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곳 동백나무 연리지는 그 사이로 남녀가 지나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널리 알려질 만큼 변치 않는 사랑나무로 알려지고 있다.

 

충남 외연도 동백나무연리지

                    

 

이렇게 지금까지 알려진 연리지나무는 모두 3그루이다.

지금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 그렇지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같은 종류의 나뭇가지와 가지가 맞닿아서 오랜 세월이 가면 연리지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항상 있어서다.
그러나 연리목은 연리지보다는 자주 만날 수 있다.

자연상태에서 두 나무가 가까이 자라다가 지름이 굵어지면 맞닿게 되고 서로 움직일 수 없으니 둘이 합쳐질 수밖에 없어서다.

 

연리목의 모양이 독특한 나무로서는 충남 금산군 금산읍 양지리 장동마을의 팽나무 연리목이다. 마을회관의 언덕바지에 자라는데, 아래는 마치 두 남녀가 얼싸안고 있는 형상이며 위는 서로가 입맞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충남 금산읍의 팽나무연리목

                     

 

150여년 전 평소에 아내 사랑이 남달랐던 한 남편은 아내가 죽은 후 이곳에 팽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다음날 가보니 두 그루가 되어 있었다한다. 자라면서 이처럼 ‘포옹나무’로 변하자 마을사람들은 아내의 넋이 깃들었다고 하여 부부팽나무를 아끼고 있다.

 

이외에도 경북 영주시 순흥 면사무소 앞마당에서 줄기를 서로 휘감아 가면서 서로 붙어 있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으며 숲속의 등산길에서는 연리목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의 소나무연리지



 

연리가 되는 과정을 조금 자세히 알아보자.


이웃한 나뭇가지나 가까이 심은 두 나무의 줄기는 차츰 굵어져 서로 맞닿게 된다.

해마다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므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로를 심하게 압박한다. 우선 맞닿은 부분의 껍질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여 파괴되거나 안쪽으로 밀려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맨살끼리 맞부딪친다.

 남남으로 만난 둘 사이에 사랑의 스킨십이 이루어지면서 물리적 접촉 단계를 지나 생물학적 결합을 시작한다.
먼저 굵기 자람을 담당하는 ‘부름켜’가 서로 연결해도 거부반응이 없을지를 알아본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은 후 합쳐도 좋다는 뜻이 맞으면, 두 나무의 세포는 운명적인 만남을 완성하기 위해 이어지기를 시도한다.

부름켜는 가진 물질을 서로 주고받고, 이어서 양분을 공급하는 방사조직을 서로 섞어버린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세포들은 맞닿는 선을 따라 차근차근 서로의 세포벽을 잇는 공사를 진행한다. 이렇게 생물학적 결합이 끝나 공동으로 살아갈 한몸으로 완성되면서 연리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두 나무 세포가 결합하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은 하나의 나무와 똑같아진다.

 

충남 금산읍의 팽나무연리목


 

연리지 형성 과정도. 부름켜, 방사조직, 나이테의 색깔을 달리하여 다시 그린 그림이다.

 

 

이런 나무를 잘라보면 마치 쌍가마처럼 한꺼번에 두 개의 나이테 두름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미 하나의 몸이므로 양분과 수분을 같이 쓴다.

불행히 한 쪽 나무가 잘려나가더라도 광합성을 하는 나머지 한 쪽 나무가 양분을 공급해 주면 살아갈 수 있다.
연리는 일부러 만들 수도 있다. 연리지를 만들기 위하여는 같은 종류의 두 그루 나무를 한 걸음 정도 떨어지게 심는다. 가지 둘을 골라 껍질을 조금 긁어내고 탄력 있는 튼튼한 비닐 끈으로 묶어두고 느긋하게 몇년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붙었는지를 확인하려고 가끔씩 끈을 풀어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서로가 믿음을 가질 만큼의 시간은 줘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손을 꼭 잡고 있는 듯한 모습의 연리지가 만들어지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줄기도 차츰 굵어지므로 두 줄기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결국 두 줄기는 맞닿아 하나가 되는 연리목으로 사랑의 대장정은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이렇게 연리지에서 출발하여 연리목까지 이어지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

연리지를 생략하고 처음부터 연리목을 만들려면 심을 때 아예 꽁꽁 묶어서 심어도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나무로도 연리를 만들 수 있으나, 의미가 있는 나무를 따로 골라도 좋다. 사랑의 자귀나무나 귀신 쫓는 음나무를 추천하고 싶다.

자귀나무는 합환목(合歡木)이라고도 하여 밤이 되면 증산작용을 줄이기 위해 마주 보고 벌어진 잎을 닫아버리는데, 이 현상을 보면 궁합이 잘 맞는 부부가 연상된다. 음나무는 나쁜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진 나무다. 그 듬성듬성한 가시가 웬만한 잡귀들은 범접도 못하게 하는 위엄이 있다.

 

소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잘못된 만남


하지만 아무 나무나 서로 맞닿게 한다고 연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리란 종류가 같은 나무, 예를 들어 음나무와 음나무, 자귀나무와 자귀나무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감나무와 고욤나무처럼 아주 가까운 친척 사이이어야 한다.

대체로 접붙이기가 가능한 나무는 연리가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종류가 전혀 다른 나무는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을 같이 붙어 있어도 그냥 맞대고 있을 따름이지 결코 연리가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서로의 피부를 맞대고 있을 뿐이다. 세포의 종류나 배열이 서로 달라 부름켜가 연결될 수 없으며 양분 교환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런 나무는 엄밀히 말하여 ‘연리’가 아니다. 김건모의 노래 제목처럼

‘잘못된 만남’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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