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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 - 서양미술을 통해 본 악의 이미지
채효영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예술가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
우리는 섬뜩하고 끔찍한 추한 것에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런 것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죽음, 질병, 바이러스, 자연, 욕망과 광기, 전쟁 등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대부분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의 꾸밈을 받는 것들이다. 즉 ‘우아한’, ‘숭고한’, ‘경이로운’ 것들은 아름답고 곧 선한 것이 된다. 이렇게 수 세기 동안 미와 선은 동일어로 취급해 왔다.
노르웨이 출신의 상징주의 작가 에드바르 뭉크가 그린 유명한 〈절규〉라는 작품을 보면 전혀 우아하거나 숭고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공포에 떨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그 자체가 공포이다.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던 뭉크의 삶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예술의 존재 이유가 ‘인간’에 있다고 말한다. 즉 예술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양의 휴머니즘은 인간의 합리주의와 이성에 기초해 인간과 자연, 정신과 육체,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 우리와 이방인을 선과 악으로 분리했다는 것이다. 즉, 인간, 정신, 남성, 이성, 우리는 선이고, 자연, 육체, 여성, 감성, 이방인은 악으로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양 정신의 두 얼굴이다. 《예술가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에서는 휴머니즘이 주도하던 남성 위주의 서양 문화에서 오랫동안 악으로 여겨진 ‘죽음, 자연, 여성, 욕망과 광기, 이방인과의 전쟁’을 주제로 미술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시대순으로 미술사를 설명하거나 단편적으로 예술가나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의 책들과는 달리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다.
#책속으로
p20 <절규>에서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형상이,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괴물로서 공포의 대상인 것은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즉, 죽음은 외부에도 내 안에도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추구하는 직선적 시간관의 세계에서 살아온 뭉크는 인간이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자연에 속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절규>에 나타난 뭉크의 죽음에 대한 공포의 근원에는 바로 이러한 서양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p98 자연숭배는 삶과 죽음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 모두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반 고흐에게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밤하늘은 당연한 것입니다. (…) 범신론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아마 이것 때문에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저주받는 화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그림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의 기운을 강하게 풍겼고, 당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p145 서양미술에서는 전통적으로 관객과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남성이어야 했고, 여성은 보이는 대상이어야만 했습니다. 당당한 시선은 권력을 움켜쥔 남자들의 것이었으니가요. <올랭피아>가 19세기에 스캔들 메이커가 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여성은 더 이상 보이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으니 말입니다.
p267 그림 속의 오필리아는 매우 평온한 표정입니다. 다가오는 죽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광기가 어떻게 인간성을 잠식하는지를 드러냅니다. 인간성의 근원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존재하지만, 광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필리아는 그래서 물에 빠져 죽습니다. 서양 문화에서 물은 죽음과 인간성의 아득한 심연, 즉 광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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