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살고 싶다 -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 위대한 한국인 10 위대한 한국인 10
이상경 지음 / 한길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가벼운 풍문과 무책임한 농담 속에서만 떠도는 여자들이 있다. 나혜석! 그녀도 그러했다. 최초의 근대 여성화가였고, 연애 대장이고, 일본 유학까지 한 '신여성'이며 1920년대에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고, <이혼 고백서>란 글을 발표하여 당시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킨 여자. 말년에는 행려병자로 비참하게 죽은 여자. 잘난 여자의 화려하고 비장한 삶이려니 여겼다.

그러나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기 시작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눈물 한방울이 툭 떨어졌다. 아아! 어쩌자고 이 여자는 그다지도 용감했더란 말인가! 철옹성 같이 완고한 가부장 식민지 조선에서,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 여자는 '없는 희망'을 찾아 홀로 고투하다 죽어간 여자는 아닐까?

그녀는 소문처럼 그렇게 부박한 연애 대장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고, 매순간 최선을 다해 자기를 향상시키려는 뜨거운 열망을 갖고 있었다. 물론 영악한 타산도 보이지만---

남아있는 글들을 보면 그녀는 여자로서의 체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소설 <경희> '경희도 사람이다.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아이를 낳고 발표한 <모된 감상기>에선 '자식이란 어미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며 어미되기의 두려움과 고통을 파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모성의 미덕이란 지금도 너무나 당연시 되는데---, 그 신비화된 모성의 신화를 조목조목 부정하다니---.

자기를 계발하고 발휘하는 절정의 시기에 운명처럼 맞이하는 임신! 이것은 1920년대 나혜석 이후 공적 영역으로 나온 숱한 여성들이 부딪친 문제가 아니던가?

여성의 독자적 개성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완고한 사회를 고발한 <이혼 고백서> '정조는 취향이다,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다.'란 주장을 하는 <신생활에 들면서>. 아! 얼마나 대담한 여자인지! 여자가 그 시대에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감히 이야기하다니! 지금도 일부에선 '순결'을 들먹이고, 여성의 주체적인 성적 욕망을 이야기하면 껄끄러워들 하는데---.

그녀는 정말 자신의 욕마에 솔직했구나. 사회적 관습을 무시할 수 있는 크나큰 용기도 있었구나. 아! 그녀는 자신을 뜨겁게 사랑했구나.

그러나 한 개인은 자기가 태어난 시대를 얼마나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떨까? 신여성들이 부딪쳐 괴로워했던 문제들이 지금 나에게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삶은 이다지도 지리멸렬한데---.

인형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나혜석! 이혼 후 사회와 가족의 무자비한 냉대와, 자신과 사회에 대한 피투성이 싸움을 부면---. 시립 양로원을 전전하다 텅빈 길에서 삶을 마친 비참한 종말을 보면---

자신을 사랑하고 드러내는 여자들이 더이상 단죄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어디 있는가? (지금이라고? 정말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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