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교수님은 대학교 4학년 때 이기석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고 한다. 8년 가까이 선생님을 모시고 한문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과 정민 교수님의 관계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유품정리 때 사모님이 선생님의 한자 옥편과 한적을 정민 교수님께 물려줄 정도로 각별했던 것 같다. 갑갑증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 될 때, 선생님의 산소로 달려간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나는 찾아뵙고 싶은 선생님 한 분을 찾지 못했다. 분명 좋은 선생님들도 많으셨는데, 이렇게 된 이유에는 내 성격이 한몫했다. 학년이 지나고 선생님을 찾아뵙기 쑥스럽기도 했고, 더 좋은 성적을 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에 내 현실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상황이 좋아지면 찾아봬야지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매년 담임선생님과 과목 선생님이 바뀌고, 대학입시라는 좁은 목표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선생님들과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 못 했던 게 지금은 참 아쉽다.
대학에 와서는 4년간 정말 좋은 교수님들을 많이 만나 뵐 수 있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장기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선생님과 교류하는 감정을 느껴보았다. 하지만 역시 취업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다시 소통을 막았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이건 정말 변명이지만 선생님을 찾아뵙기에는 바쁜 생활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보니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거의 없다. 회사의 선배는 존재하지만 선배는 선생님의 느낌은 아니다. 회사와 사적인 일상 이 분리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회사는 더욱 일만 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8년씩 선생님을 모시지 않으면 인생의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인 걸까? 내 평생에 정민 교수님이 선생님을 만나신 것과 같은 인연이 있을 수 있을지, 그런 인연을 위해서는 내가 가장 중요한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 바꾸어야 하는 것일지 생각이 많아지는 페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