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정민 산문집 2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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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에서 많은 사람과 만났고,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사람에 대한 글과 책에 관한 글을 모으니 책 한 권 분량이 넘는다.

사람의 평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좋은 만남은 나를 들어 올려주고, 이전의 삶과 구획 지어준다.

책 속의 짧은 일별로 나른하던 일상에 생기가 차오른다.

지금의 나는 이 같은 만남이 가져다준 변화와 소통의 결과일 뿐이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서문中, 정민, 김영사

이 책의 서문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학자라고 표지에 쓰여있지만, 사실 나는 정민 교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른 채 교수님의 산문집을 선택했다. 사람을 읽고 책을 만난다고 표현한 제목을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보니 정민 교수님은 책을 읽듯 천천히 요리조리 사람을 읽어내시고, 사람을 만나듯 책에 마음을 담아 하나하나 만나 오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교수님이 읽어오던 책 속의 몇백 년 전의 선학, 지금은 만나 뵐 수 없는 스승, 그리고 교수님이 읽어왔던 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전을 많이 안 읽어서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이나 책을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익숙한 이름은 벌써 십 년 전인 고등학생 때, 사회문화를 할까? 윤리를 할까? 고민하며 찔끔 접하고 국어 지문을 빨리 읽기 위하여 읽어보았던 고전문학 찔끔의 경험 덕분에 생각이 났다. 이 책에 나온 인물이나 책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내 생각과 교수님의 생각을 핑퐁 핑퐁 하며 더 재미있게 읽었겠지만,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감명받은 페이지들이 곳곳에 있었다.


오래된 벗이 먼 길을 떠나는데 친구를 위해 근사한 술자리 한번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할 때, 대나무 상자 속에 아껴둔 종이를 꺼내 작게 잘라서 공책을 만들고 그 안에 수백 수의 고시와 근체시를 적어 시집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 글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표현하기 위한 가난한 친구의 마음에서 한 번, 친구의 진심을 느끼며 멀리 떠나는 친구의 마음에서 한 번. 어떤 입장이어도 절절하지 않을 때가 없었을 것 같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친구의 좋은 일, 슬픈 일에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마음을 전한다는 건 이렇게 정성을 담아야 하는데, 나는 요즘 너무 쉽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착각하였다.


정민 교수님은 대학교 4학년 때 이기석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고 한다. 8년 가까이 선생님을 모시고 한문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과 정민 교수님의 관계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유품정리 때 사모님이 선생님의 한자 옥편과 한적을 정민 교수님께 물려줄 정도로 각별했던 것 같다. 갑갑증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 될 때, 선생님의 산소로 달려간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나는 찾아뵙고 싶은 선생님 한 분을 찾지 못했다. 분명 좋은 선생님들도 많으셨는데, 이렇게 된 이유에는 내 성격이 한몫했다. 학년이 지나고 선생님을 찾아뵙기 쑥스럽기도 했고, 더 좋은 성적을 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에 내 현실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상황이 좋아지면 찾아봬야지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매년 담임선생님과 과목 선생님이 바뀌고, 대학입시라는 좁은 목표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선생님들과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 못 했던 게 지금은 참 아쉽다.

대학에 와서는 4년간 정말 좋은 교수님들을 많이 만나 뵐 수 있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장기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선생님과 교류하는 감정을 느껴보았다. 하지만 역시 취업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다시 소통을 막았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이건 정말 변명이지만 선생님을 찾아뵙기에는 바쁜 생활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보니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거의 없다. 회사의 선배는 존재하지만 선배는 선생님의 느낌은 아니다. 회사와 사적인 일상 이 분리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회사는 더욱 일만 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8년씩 선생님을 모시지 않으면 인생의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인 걸까? 내 평생에 정민 교수님이 선생님을 만나신 것과 같은 인연이 있을 수 있을지, 그런 인연을 위해서는 내가 가장 중요한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 바꾸어야 하는 것일지 생각이 많아지는 페이지였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해야겠다고 (실천은 참 어렵지만)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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