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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유기체다'란 문장에 공감이 갔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를 살고있는 나는 소소하지만 미래의 도시를 이루는 한 궤적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때로는아름답게, 때로는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공간들을 걷고있는 내가 도시의 수용자가 아니라 주체가 되고자 하는 작은 관심과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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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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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인    



 이 책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카인이 흔히 알고 있는 구약의 몇몇 사건의 목격자로서 시공간을 넘나든다는 설정을  통해

기독교 신자이든 아니든, 한 두번쯤 가졌을 법한 의문을  여호와에게 다이렉트로,  아니 겁 없이 돌직구를  날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주제 사라마구의 해석과 상상에 수긍을 하든, 안하든  조금은 속이 시원해지는 그런 스토리를 갖고 있다.


 구약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신은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궁금해하며

자신이 원치 않는 결과를 선택했을 때는 가차없이 징벌을 내리고 진노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인간적 분노와 의문을 덮어버리고 과감히 신의 뜻을 수용한 아브라함에겐 모든 것을 내어주는 극적인 양면성을 보여준다 .

 예전에는 이러한 구약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간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과 시련을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우리같은 인간은 감히 헤아릴 길 없는 섭리(믿음을 시험하고 단련시키기 위한)로써만  받아들이도록 강요되어 온 바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무조건적인 신앙을 주입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현대의 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분명 있음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할 수 있고,  그런 영향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그 어디엔가 있을법한  신의 존재를 강한 확신은 갖지 못해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못하는

그런 심리를 어느 정도 갖게 되는 것 같다. 


1장에선 여호와가 결정적 실수로 말 한마디 못하는 두 사람에게 자신의 혀를 밀어넣음으로써 인간에게 언어를 부여한다는 설정이 조금 외설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웠다.

또한 인류가 번성하기 전,  자유가 주어졌지만 삶을 경작할 구체적인 방법 하나 없이 내쫓겨 황량하기 그지없을 태초의 땅에 첫발을 내딛었을  "지상낙원의 극소수의 거주자들"의 고독과 감정에 대한 부분은 전에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흔히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 운운했던 것이 이 최초의 사람들로부터 발원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우선 에덴동산과 선악과의 문제로부터 원죄가 발생하는 에피소드는  내가 교리공부를 처음 시작한  날부터 갖던 의문이며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니, 선악과를 하나 따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에덴동산을 구경도 못한 후대의 인간들이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설정은 이 지구 어디에도 없는  연좌제의 극치 아닌가 하는....

 또한 선악과를 먹은 걸로 모자라 생명나무를 건드릴지도 모른다는 신의 불안은 아예 싹을 제거함으로써 유일신으로 남고자 하는 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신 또한 인간과 다름없이 권력지향적인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 아닌가.


3장에선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롤모델로서의 카인과 아벨이 등장한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살인자인 카인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여호와의 불분명한 아벨에 대한 편애는 그대로 현재의  우리들 일상에도 투영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 없다는 변명에도 불구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좀 더 예쁜 자식과 이유없이 보기싫거나 정이 안가는 자식도 있는 것이 진실이다.

타당한 이유 없이 자신의 제물을 거부당했을 때 받았을 카인의 상처가 만져진다.

 그는 애시당초 살인자가 되어야하는 운명이기에 신은 그의 제물을 거부한 것일까?


     나는 주를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아벨을 죽엿습니다. 따라서 의도로 보자면 주도 죽은 것입니다.  - P40


이것이 카인의 진심이다.  최초의 존속살인(?)의 충동,  피의 강은 유구한 세월을 흘러 현재 우리 앞에까지 이르른 것일까? 도처에 피냄새가 만연하다.


이후 카인의 구약 여행이 시작된다. 그랑기뇰을 보는 듯한 무작위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비연쇄적인 사건들

생존을 위해 떠돌다가 그는 어느 성에 이르러선 늙은 노아 대신 릴리스의 침대에 들어 자신의 핏줄을 잉태시키고,

소돔과 고모라에 이르러선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황금 송아지를 만들며 퇴폐적인 유희를 즐겼다는 이유로 삼천명에 이르는 죽음을 목격한 카인은

여호와의 진노로 유황불에 타죽은 죄 없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분노한다.

신은 과연 누구의 하느님인가? 순명하는 아브라함만의 하느님인가?

허리케인으로 바벨탑을 일격에 부셔버린 여호와,

작가는 이를 여호와가 자존심 때문에 완성을 허락하지 않은 탑이라 말한다.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106  라고 적고 있다.


후반부에 이르러  구약에서 빠질 수 없는 욥이 등장한다.

작가는 카인의 입을 빌어 여호와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데, 왜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신뢰해야 하는지(p.163)

모르겠다고 한다. 더구나 신심 깊은 욥을 두고 악마와 벌이는 신의 내기라니...

목숨을 잃더라도 하나님을 저주하겠다는 욥의 아내의 말에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아니하겠는가" 라는 욥의 신앙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사탄이 여호와의 또 다른 도구에 불과한 것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어하지 않는 더러운 일을 하는 도구 같다는 (p.169)   욥의 아내의 말에 차라리 수긍하고 싶어진다.

욥이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여 저주와 탄식을 늘어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체념의 필요성,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건 간에 그 뜻에 머리를 숙일 의무에 관해 설교한다.

이 설교는 현재까지도 제단 곳곳에서 진행중이다.


 마지막으로 노아방주 이야기,

이것에 대한 과학적 검증의 노력은 현재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작가는 성경에 드러난 문자적인 모순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인류의 멸망을 우려한 노아가 대항해를 앞두고 자신의 아내를 비롯하여 딸들까지 다 카인에게 허락했지만 카인은 그들을 모두 죽이고

노아 스스로는 자살을 하게끔 유도한다. 이로써

신의 마음에 꼭 드는 신인류의 새로운 여정을 설계했을 여호와의 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그  앞에서 카인은 당당히 자신이 모두를 죽였음을 실토한다.

망연자실한 여호와 앞에 카인은 자신을 죽이라고 하지만 여호와는  하나님의 말은 물릴 수 없다며

    

     너는 텅 빈 땅에서 자연사할 것이고 썩은 고기를 먹는 새들이 네 살을 삼킬 것이다.

    네, 당신은 내 영혼을 삼킨 적이 있지요. p.207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둘은 끝없는 논쟁을 벌인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책을 덮으면서  우리는 신의 설계도대로 움직이는  나약한 피조물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생각,

시공간을 초월한 우리의 하느님은  온 우주까지를 돌보는  건 차치하고

이 지구에 관심을 갖고 계시긴 하는건가 하는 원망과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일상의 평화를 갈구하는 우리들의 기도가 신에게 도달하기까진 너무 짧고 미약했던가 ..

 이 책은 사라마구가 86세에 발표한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비록 무신론자였지만 어느 유신론자보다도 신과 인간의 문제에 탐닉헌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위트있고 환상적으로 펼쳐낼 수 있는 그의 역량이 느껴진다.

어쩌면 욥의 아내의 말처럼 신과 마귀는 같은 몸을 가진 두 얼굴일지 모른다.

신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여 창조된 인간인 우리의 모습 속에 카인과 아벨이 함께 사는 것처럼...

미흡한 신앙이지만  가톨릭 신자인 내가

가톨릭과 EU.  IMF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은 한  무신론자의 거침없는 요설에 대책없이 빨려든 것 아닌가 하는 자책도 들지만 신은 설명되어지지 않는 존재라는 구태의연하면서도 변함없는 진리에 다시금 수긍하며 돌아선다.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예수 복음>을 서둘러 펼쳐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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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사물들 - 개정판
김선우 지음, 우창헌 그림 / 단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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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사물들에 입혀진 낯선 이미지가 너무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런데 그것들은 시인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으로부터 솟아난 상상력이고

꿈이고 그리움들이다. 

 독창적인 세계를 가진다는 건 나만의 시선으로 포착한 영역을  의미할테지만

 그만큼 본질에 대한 사유 없이는 확보하기 어려운 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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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박경희 지음 / 서랍의날씨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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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가슴 조이고 웅크렸다 활짝 피어나고 또 쓸쓸히 지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천연덕스런 욕쟁이 엄마와 받아치기 선수인 딸의 가슴 시리면서도 따뜻하고 웃음나는 삶의 편린들이
곳곳에서 반짝거리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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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김명남 옮김 / 까치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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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장점은 자칫 딱딱하기 그지없을 내용들을 여러 실험 사례들을 인용해  위트 있는 문장으로 이끌어간다는 데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책을 덮을 때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를 비합리적인 낙관주의자로 만들어버린다는 데 있다. 

   이 '새로운' 무의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생에  깊숙이 개입하여 광범위하고 분주히  활동하고 있는 까닭에 인류가 이제껏 생존하고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동안 학습된 프로이트의 억압적인 무의식으로부터 벗어나  내 생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생의 길잡이가 되고 구원투수가 되어주는 고마운 반쪽임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각 장마다 밑줄 긋게 만드는 문장들이 많았지만 특히 마지막 장, 작가의 부모님에 관한에피소드는 뇌과학이라는 낯선 학문에 따뜻한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을 때마다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고 타인에 대해서도 설명 불가했던 많은 의문점들을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에 대해서, 또는 타인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그리고 긍정적인 관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야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가슴에 그은 문장들

  눈은 단순한 물리적 기관이 아니라 그 소유자가 양육된 전통에 따라서 조건화된 인식 수단이다.

                                                                                                    -    루스 베네딕트    P.45

 

  사회적 거부는 정서적 고통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존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관계의 결핍은 건강을 해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p.117

 

  지속적인 범주화 편향이 편견의 뿌리가 된다는 깨달음            p.207

 

   어떤 범주의 구성원들과 반복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그들에게 사회적으로 부과된 부정적 특징에 대한 해독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p.216

 

  어떤 깊은 감정들은 아무리 심오한 내성법으로도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p.243

 

  진화는 인간이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뇌를 설계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존을 돕도록 설계했을 뿐이다.  p.264

 

  사람들은 싫어하는 증거에는 흠을 내고 좋아하는 증거는 빈틈을 메운다.     p. 286

 

  자신의 앞길에서 점들이 이어져 있다고 믿으면, 설령 남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는

  결과가 되더라도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마음을 따를 수 있다.                        p.294 

 

  우리가 세상을 마주할 때, 비합리적인 낙관주의는 몸을 수면에 띄워주는 구명조끼로 기능한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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