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카의 여행
헤더 모리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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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냉혹함은 너무 차가워서 어떤 간절한 목소리도 변명도 들어주지 않는다. 영광으로만 표현된 전쟁의 승리 이면에 감춰져서 회복되지 못하는 상처들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끝도 없이 닥치는 고난에도 실카는 버틴다. 죽음을 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수모와 역경에도 '살아남겠다'라는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천성인지, 단련된 것인지 몰라도 그런 상황에서 온정을 베푸는 모습은 대단하다.

수용된 여성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모든 면에서 약자다. 그들끼리도 갈등이 생긴다. 어긋나면 한 쪽이 나쁘고 다른 쪽은 선하고 억울해 보인다. 일인칭에서 단편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거나, 간사하거나, 어리석어 보이지만 전지적으로 관찰하면 명확하다. 모두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후에 재평가를 받으면 악인으로 낙인찍힌다. 이것이 전쟁이 비극적인 이유 중 하나다. 똑같이 비참하고 불쌍하게 당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생존하는 방식이 다를 뿐인데 말이다.

수용소에는 절망만 있지 않았다. 따뜻한 본성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카를 비롯해 수용자들은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도 광기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을 지켰다. 어린 실카의 여행은 잔인하게 출발했지만 꿋꿋하게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지켜왔기에 품격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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