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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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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화가 등장인물들의 목숨을 위협할 때면 내심 안도했다. 세라 워터스의 소설 <나이트 워치>1947년부터 1941년까지 역순으로 진행되며, 첫 챕터 '1947'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 되니까.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나서, 이들이 단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라 워터스가 <나이트 워치>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끔찍한 난리통에서도 일상은 지속되며 어느 순간에는 반짝 빛나기도 한다는 것이 아닐까. 공습경보가 발령되고 이웃이 다치고 죽는 순간에도 차마 놓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그게 결코 '사랑'이나 '우정', '욕망' 같은 단어 몇 글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란 걸.

 

남겨진 사람들

어떻든,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1947', '1944', '1941'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챕터 '1947'의 시간적 배경인 1947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전쟁에서 '생존'한 사람들이니까.

여섯 명의 주요 등장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견디고 운이 좋게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들을 '남겨진 사람들'이라 부를 법도 하다. 전쟁은 인물들을 할퀴고 지나갔고 모두가 현재의 삶에서 그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감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야간 구급대원으로 일하며 부상자를 구하고 사망자를 옮겼던 케이는 종전 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한다. 전쟁 때 피해 복구를 담당하는 시청 부서에서 일했던 헬렌은 결혼정보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자신이 점차 피해자들에 대해 무심해진다는 걸 느끼며 결혼정보업체로 이직했지만, 종종 전쟁에서 남겨진 사람들을 짝지어 준다는 것에 환멸을 느낀다. 헬렌의 연인 줄리아는 전시에는 아버지와 피해 주택을 조사하는 일을 했고 틈틈이 작품을 써 소설가가 됐다. 타이피스트 비브는 전쟁 중에 만난 유부남 애인에게 이별을 고할 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비브의 동생 덩컨과 프레이저는 병역거부로 전쟁 중 수감 생활을 했으며 이로 인해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각자만의 사연과 상처, 비밀을 지닌 채 1947년이라는 같은 시간을 산다. 남겨진 사람들의 1947년은 전쟁에 폐허가 된 배경처럼 쓸쓸하고 침체되어 있다. 행복감을 느끼다가도 사회불안이 지속되는 시기에 이래도 되는 것인지 금방 자책하고 만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실의에 잠겨 있거나 삶의 의지를 잃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며 살아 남은 사람들을 조금 더 아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남겨진 사람들의 미덕이라는 듯이. 그래서 더 먹먹하게 느껴지는 1947년이다.

 

함께함을 선택한 사람들

소설 속 시간이 1947년에서, 1944, 1941년으로 거슬러내려가면서 등장인물들이 전쟁이라는 공포를 견디기 위해, 일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함께함'을 선택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라 워터스는 이 과정을 세심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때는 1944. 티격태격하며 종종 서로를 미워하는 듯 보이는 덩컨과 프레이저는 한밤의 폭격이 진행되는 동안 같은 침대에서 시간을 견딘다. 1947년 덩컨과 함께 사는 것으로 그려진 '호러스 삼촌'이 실은 수감 생활을 하며 만난 먼디 교도관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교도소의 구조 상 수감자와 교도관은 대척점에 위치하며 서로를 경멸하기 마련이지만, 덩컨은 먼디에게서 아버지와 같은 따뜻함을 느꼈고 종전 후, 가족-특히 병역거부로 인해 수감됐음을 창피해 하던 아버지-을 두고 먼디와 함께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것만이 어떤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나이트 워치>를 읽으며 독자는 크게 케이, 헬렌, 비브, 덩컨에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주로 이들의 시각으로 시대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들의 감정의 결을 세세히 읽게 되기 때문이다. 각자 아픈 사연을 지닌 채 끔찍한 시간을 보냈지만 이들 중 헬렌이 특별히 가까이 와닿는 건, 헬렌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나약함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개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의 시간 속에서도 각자의 마음만큼은 통제할 수 없다는 걸, 마음만은 의지에 따라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님을, 헬렌은 보여준다.

1947, 헬렌은 줄리아와 연인 사이로 지낸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도중에도 종종 줄리아에게 전화를 걸어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줄리아를 의심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그리고 1944, 헬렌의 연인은 줄리아가 아닌 케이다. 헬렌은 자신을 알뜰살뜰히 챙기는 케이를 가끔 버겁다고 느낀다. 그 와중에 줄리아가 헬렌에게 다가서고, 헬렌은 자신도 모르게 줄리아에게 끌린다. 케이가 야간구급대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등화관제 때나, 폭격이 이루어지는 동안 혼자 있을 때가 많았던 헬렌은 어느 밤, 줄리아의 집을 찾는다. 그러는 사이 헬렌과 케이가 함께 사는 집이 폭격을 맞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케이는 구급 업무 중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간다. 헬렌을 잃은 줄 알고 망연자실했던 케이는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안도한다. 헬렌이 줄리아와 함께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케이는 헬렌의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자신의 곁에 있는 연인 헬렌을 잃고 만다.

"줄리아. , 줄리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헬렌을 잃은 줄로만 알았어."

케이의 외침은 가슴속에 사무친다. 전쟁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어쩌면 더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이란 게 너무 아름답고 처절해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

<나이트 워치>는 여려 겹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그간 줄곧 레즈비언 서사를 써온 세라워터스는 2006년 발표한 <나이트 워치>에서 달라진 세계를 보여준다. 19세기 레즈비언 스토리가 중심을 이뤘던 전작과 달리 시대적 배경을 20세기로 택했고 '런더너'들의 정체성을 고민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고민의 폭이 넓어졌다.

등장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을 견디며, 사랑을 나누며,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며, 끔찍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공포 속에서도 자아를 발견하고, 고민하고,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곧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문제로 연결된다.

전시에 병역거부로 수감된 덩컨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덩컨과 그의 친구 알렉이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다. 입영 영장을 받은 알렉은 "이건 우리 전쟁도 아냐. 그런데도 그 고통을 우리가 고스란히 견뎌야 하지. 우리는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해. 정부에선 심지어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는데!"라며, 입영을 거부한다. 단순한 거부가 아니다. 알렉은 자유의지로 목숨을 끊기를 계획한다. 의연하고 당찬 태도다. 하나뿐인 친구 알렉을 잃을 수 없었던 덩컨은 함께 목숨을 끊기로 한다. 알렉이 "그럼 이따 보자, 덩컨." 하며 목을 긋는 순간, 덩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덩컨은 목숨을 끊지 못했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덩컨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는 아들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덩컨은 더 이상 주눅들지 않기로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목숨을 걸고 싸운 이들이 쟁취한 세상에 편승하게 될 거라는 생각도 지우려 한다.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가 죽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자체가 하나의 모순이기 때문에.

비브와 유부남 애인 레지의 이야기는 어떤가. 비브는 전쟁 중 기차에서 군인 레지를 만난다. 1941, 그들의 첫만남은 순수하고 인간적인 호의로 가득 차 있다. 시간이 지나며 연인 관계로 발전한 그들을 기다리는 건 묘한 삐걱거림이다. 비브는 임신을 하고, 레지에게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혼자 끙끙 앓는다. 그러다 점점 배가 불러오고 레지와 함께 임신중절수술을 받는다. 당시 수술이 불법이었으며, 둘의 사이가 '불륜'이었기 때문에 비브는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다. 수술 이후 출혈이 심해 구급차를 불러야 했을 때, 레지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사라진다. 이러한 일들을 겪은 후 비브는 레지와의 만남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1947, 비브는 동생 덩컨과 함께 수감 생활을 한 프레이저와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한편, 헬렌은 동성연인 케이와의 나들이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괴로워한다. 케이의 적극적인 애정 표현을 남들이 볼까 봐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자연스레 사랑을 주고 받는 이성연인들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반면 케이는, 헬렌과 달리 좀 더 자유로운 태도로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후 헬렌은 줄리아와 연인이 되었을 때도 남들의 눈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에 괴로워한다. 그런 헬렌을 케이가 봤다면, 예전 헬렌과 케이가 연인이었을 때처럼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우리의 사랑에 집중하면 된다고 말이다.

", 좀 어때서? 빌어먹을 19세기도 아니고."

 

무엇보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충실하게 현재를 산다. 내일이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것을 선택한다.

케이는 야간 구급대원으로 일하며 헬렌은 시청에서 피해 복구를 담당하고, 줄리아는 피해 주택을 조사하는 일을 하며 소설을 쓴다. 전쟁으로 인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줄리아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헬렌과 처음 밤 산책을 나설 때도 원고를 챙긴다. 그러면서 "귀찮지만, 그래도 폭탄에 날아갈까 겁나서요."라고 능청스레 말한다.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폭격을 맞으면요?" 헬렌의 질문에 줄리아는 답한다. "그땐 이러나저러나 신경쓸 것 없지 않겠어요?" 어떤 미래가 도래하든 현재에 소중한 것을 꼭 붙잡아야 한다는 태도다.

<나이트 서치>의 인물 대부분이 현재를 충실히 감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달려가듯 읽어내려 마지막 장면에 가닿았을 때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격한 슬픔보다는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뜨거운 울림일 것이다.

1941, 헬렌은 폭발로 인해 건물 기둥에 깔렸고, 구급대원으로 찾아온 케이를 만난다. 두 사람의 첫만남이자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건물이 무너질지 몰라 헬렌은 한동안 기둥 아래에 있어야 했고, 케이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한다. 곧 케이는 다른 부상자를 이송해야 해 현장을 떠나야 했고, 구조반 남자들에게 예쁘게 보여야 한다며 헬렌의 얼굴을 닦아 준다.

 

케이는 좀더 먼지를 닦아낸 뒤 손으로 헬렌의 턱선을 쓰다듬으며 내려와 손바닥으로 턱을 받쳤다. 그녀 옆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케이는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며 헬렌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이런 끔찍한 아수라장에 이처럼 생생하고 이토록 티 없이 깨끗한 존재가 숨겨져 있었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660쪽

 

독자들은 케이와 헬렌의 첫만남 이후 벌어질 사건들을 이미 알고 있다. 케이와 헬렌은 이별을 겪고 헬렌은 줄리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참담한 전쟁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마지막 장면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퇴색시키지 않는다. 언제나 현재는 한순간이기 마련이며 그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나이트 서치>가 감동을 주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거슬러 거슬러 되돌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지금'이 있다는 것. 그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등장 인물들은 '나이트 서치'처럼 자신들의 행복을, 사랑을, 우정을, 존엄성을 찾고 있다는 것.

 


-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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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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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고 나무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리처드 파워스의 장편소설 <오버스토리>는 나무와 사람의 이야기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인물은 제각각의 사연으로 나무 그리고 숲과 연결된다. 나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터득하는 아홉 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큰 숲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느슨하고도 끈끈한 ‘나무’의 연대

소설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인물, 니컬러스, 미미, 에덤, 레이와 도러시, 더글러스, 닐리, 페트리샤, 올리비아는 각자 다른 사연으로 나무와 연결된다. 

이들 중 몇은 대륙의 얼마 안 남은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오랜 세월 서 있던 나무를 베려는 정부와 기업에 대항하는 운동의 현장에서 니컬러스와 올리비아, 미미와 더글러스, 에덤은 각각 파수꾼, 메이든헤어(은행나무), 더그전나무, 뽕나무, 단풍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나무 이름을 지닌 이들은 연대의 힘으로 나무를 지킨다. 서로 팔을 결박해 둥그런 바리게이트를 만들어 나무를 보호하기도 하고, 나무와 몸을 연결해 벌목을 막는다. 파수꾼과 메이든헤어는 커다란 나무 위에서 1년쯤 머물며 나무를 지킨다. 두 사람은, 세상을 굽어볼 수 있을 만큼 높은 나무 위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들의 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들의 깨달음은 소설 전체에서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반복된다. 


무엇을 소유할 수 있고 누가 소유를 할 수 있을까? 무엇이 권리를 부여하고 왜 전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그걸 가져야 할까? -351p


한편, 불륜으로 불화를 겪는 부부 레이와 도러시, 게임 개발자 닐리는, 나무 이름을 지닌 인물들보다는 느슨한 형태로 나무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가운데 모든 인물을 더 큰 이야기속에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인물은 페트리샤다. 청각 장애를 지닌 페트리샤는 어린 시절부터 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관련 연구를 지속해 책을 펴낸다. 


당신과 당신의 뒤뜰에 있는 나무는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 15억 년 전에 당신들 둘은 서로 나뉘었다. 하지만 지금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엄청난 여행을 했지만, 나무와 당신은 여전히 유전자의 4분의 1을 공유하고 있다……. -190p, 페트리샤 웨스터퍼드의 책 <비밀의 숲> 중에서


<오버스토리>의 등장인물 모두는 페트리샤의 책을 읽고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나무의 연대’에 참여하게 된다. 인물들은 나무와 일체화를 이루어가며 나무와 인간이 같은 뿌리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이는 등장인물들에게 하나의 위로가 된다. “식물이 뭘 하는지를 볼 수 있다면, 우린 결코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나무의 시선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오버스토리>는 아홉 인물의 ‘지금의’ 승리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니컬러스와 올리비아, 미미와 더글러스, 에덤은 숲을 벌목해 만드는 리조트 공사 현장에 불을 지른다. 그 과정에서 올리비아가 목숨을 잃고 나머지 네 명은 각자 도피해 흩어져 삶을 지속한다. 

나무를 사이에 두고 끈끈했던 이들이 반목을 겪기도 한다. 훗날 사법당국에 붙잡힌 더글러스는 에덤을 지목하고 형을 감량받으며 사랑하는 미미가 잡히지 않도록 돕는다. 에덤은 70년씩 연이은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에덤은 이를 비극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무의 시간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짧은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버스토리>에서 인간의 시간은 현재형으로 서술되며 몇 세대에 걸친 이야기가 짧게 압축되기도 한다. 나무가 이어온 기나긴 시간 속에서 인간 사이의 갈등은 작고 사소한 것이 되기 마련이다. 다사다난한 아홉 인물의 삶은 나무들 사이에서 위로받는다. 결국, 인물들은 나무와의 연대를 지속해나간다. 


이것.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것. 우리가 얻어야만 하는 것. 이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예요. - 702p


<오버스토리>를 읽는 내내 거대한 숲 속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숲 속을 거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온갖 나무에 대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더뎠고 때로는 읽기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 이것이 바로 <오버스토리>가 지닌 매력이며, 느린 흐름이 이 소설의 내용에 딱 맞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무의 느리고 긴 시간과 비교한다면 언제나 소설의, 인간의 시간은 빠르고 짧을 수밖에 없으니까. 

소설은 한 인물에 침잠하는 이야기라고 여겨왔던 생각이 <오버스토리>로 인해 완전히 바뀌었다. <오버스토리>는 끝을 향해 갈수록 인물을 ‘인류’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인류와 자연을, 나무의 시간으로 느리게 조망하며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오버스토리>가 삶에 가져다준 최고의 선물은, 주변의 나무와 숲이 더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배경에 불과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하나의 ‘존재’가 되어 곁에 머무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그러했듯, 언젠가 위로가 필요할 때 나무를 찾게 될 것 같다.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오버스토리>를 읽은 직후, 집 주변 숲의 나무들을 베어 근린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 공사 현장에 주의 깊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오래도록 생각했다. 나무를 베어 공원을 조성하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일까. 

언젠가 바쁜 일상에 치여 나무의 세계를 잊게 된다면 그때 다시 <오버스토리>를 꺼내 읽을 것이다. 나무와 숲에 대한 배경지식을 좀 더 갖춘 채로 이야기에 완전히 녹아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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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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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한동안 잊고 있던 한 세계가 스탠드업 코미디가 벌어지는 바에서 재현된다. ‘과거혹은 한때라는 세계의 다른 이름은 폭력이다. 사랑, 재미, 무관심, 두려움……. 폭력은 각기 그럴듯한 이유를 갖는다. 나치, 유대인, 아랍인 사이 역사라는 시간 속에 행해지는 폭력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 자칫 사소해 보일 수 있는 폭력이 한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리는지,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은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에서 도발레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폭력의 세계 앞에 선 웃음

 

텅 비어 있던 무대에 키가 작고, 홀쭉하고, 안경을 쓴 남자 도발레가 등장한다. 관객들은 한바탕 웃어 재낄 준비가 되어 있다. 도발레가 관객에게 조롱으로 첫 번째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는 카이사레아가 아니잖아, 그렇지?” 그렇다. 도발레가 서 있는 곳은 이스라엘 서북부의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카이사레아가 아닌, 실업률과 조직범죄율이 높은 네타니아다. 관객은 도발레의 조롱에 소리 내어 웃는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코미디는 시종일관 타인 혹은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는 아랍인 거리에서 정착민(이스라엘인)이 아랍인에 행한 폭력까지 웃음의 소재가 된다. 이러한 농담을 관객 일부는 못마땅해하지만, 곧 모두가 편하게 웃는다. 관객은 웃음으로 거대한 폭력의 세계를 어느 정도 용인한다.

이야기 속, 또 다른 종류의 웃음이 있다. 앞의 웃음이 다른 존재에게 폭력을 가하는 방식이라면, 지금 언급하는 웃음은 폭력을 당하는 처지에서의 처연한 웃음이다. 일말의 자존심 때문에 짓는 억지웃음인 것이다.

무대에 선 도발레는 코미디를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지닌 어머니, 수정주의적 시온주의자인 아버지 사이 외동아들로 자란 어린 시절 도발레의 이야기다. 무대 위에서 도발레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관객석에 앉아 있던 역시 기억을 끄집어낸다.

판사로 지내다 퇴직한 는 한동안 도발레와 함께했던 유년의 기억을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도발레는 전화를 걸어 와 자신의 코미디를 보고 자신에게 있는 게 뭔지 기록해 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는 잊고 싶었던 기억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오랜 옛날, 수학 과외 시간에 만난 도발레와 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되지만, 각자의 내밀한 상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사이였다. 다른 학교에 다녔던 둘은 우연히 가드나 캠프에서 만난다. 그때 는 도발레가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도발레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는 도발레는 무심하고 텅 빈 눈과 마주쳤다. 폭력의 세계 앞에 선 웃음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그 웃음은 소설에서 물구나무로 모습을 바꿔 나타나기도 한다. 도발레는 물구나무로 걸을 때면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 도발레가 물구나무로 걸을 때면 아무도 엄마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넝마를 뒤집어쓰고, 가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엄마 옆에서 도발레는 물구나무로 걸었다.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모습 뒤에 감춰진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관심 두지 않았다.

작가는, 거대한 폭력의 세계 앞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오히려 웃음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웃음이 한 사람에게 파괴력을 갖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다

 

무대 위, 도발레는 평생 지속되는 한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거 가드나 캠프에서 도발레는 장례식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리에서 혼자 나와 운전병이 운전하는 군용 트럭에 탄다. 누가 세상을 떠났는지 듣지 못한 그는 트럭에 앉아 가는 내내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신 것인지, 둘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면 누구일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도발레를 태운 트럭을 운전하는 운전병은 그의 기분을 살핀다. 도발레는 친구들 중 누구도 건네주지 않았던 담배를 운전병에게서 건네받는다. 도발레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어른이 되는 순간은 원치 않는 때에 찾아왔다. 운전병이 건넨 성인들이 할 법한 농담에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도발레는 어른의 순간을 맞이한다.

 

운전병이 내가 벌써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어쩌면 나는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거 아닐까? 271p

 

도발레는 자신이 트럭 안에서 했던 생각, 세상을 떠난 건 엄마일 것 같다는 결정때문에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자책한다. 그리고 아빠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함께 안쓰러운 마음을 느낀다. 엄마와 자신에게 폭력적으로 보였던 아빠가, 사실은 누구보다 두 사람을 사랑했으며 아빠의 삶의 모든 힘은 엄마가 그 곁에 있다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 가드나 캠프에서 도발레가 심각한 괴롭힘을 당하는 때에 는 도발레를 모르는 척한다. ‘는 도발레가 없었다면 아이들이 괴롭힐 사람은 자신이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훗날 는 후회한다. 캠프에서 장례식 소식을 듣고 혼자 떠나는 도발레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던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다시 그날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 힘들 때 곁에서 함께 걸어 줄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서.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모래가 덮인 사각형 훈련장에서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달려간다. 경로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흰 도료를 칠한 돌이 가장자리에 박힌 길, 깃발이 나부끼는 열병장. 커다란 군용 텐트. 막사들. 하사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위협을 하고. 나는 그를 무시한다. 나는 도발레에게 이르러 옆에서 함께 걷는다. 303p

 

 

 

존재한다는, 어떤 느낌

 

소설 속에서 웃음은 차가운 성질의 것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도발레는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엄마를 웃게 하려고,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엄마 앞에서 촌극을 공연한다. 운전병은 자신이 개그 경연대회에 나간다며, 도발레에게 단어를 제시하면 개그를 해 준다고 말한다. 나중에서야 도발레는, 군대에서 그런 개그 경연대회는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알았다. 운전병은 도발레가 받은 충격을 덜어 주고 싶어 노력한 것이다. 이때 웃음은 따뜻함을 품고 있다.

한편, 한때 도발레의 이웃이었던 여자는 관객석에 앉아 종종 도발레의 기억을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 주며 마음의 지지를 보낸다무대 위 도발레의 이야기를 지루해하며 야유하는 관객을 향해 저 사람이 이야기를 하게 하시오.”라고 외친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기억하게 된다.

누군가의 짐을 함께 짊어지고자 할 때, 자신의 존재는 더욱 또렷해진다. 그런 존재의 느낌은 계속해서 살아나며, ‘는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연인 타마라가 곁에 와 있다는 걸 느낀다.

마지막일 것으로 예상되는 도발레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몇 안 되는 관객 앞에서 막을 내린다. 그렇게 쇼는 끝난다. 하지만 전혀 쓸쓸한 끝맺음은 아니다. ‘는 도발레를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제안한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는 이해하면 할수록 현재 우리 사회와의 접합점을 늘리는 소설이다. 온갖 폭력의 뉴스가 난무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작은 씨앗 하나다. 밝은 온기로 그 작은 씨앗을 틔우면, 물구나무로 걸어야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비드 그로스만은 그 이야기를 소설 전체에서 에둘러 말할 뿐이다. 도발레의 마지막 쇼는 시작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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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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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유작 장편소설. 지난해 서점에서 <가수는 입을 다무네>라는 책이 나온 것을 보고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이제 더는 문학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게 됐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언제고 돌아왔을 때 다시 읽을 그녀의 소설이 이것으로 끝이라니.

그러던 어느 날, 선물처럼, <당신의 아주 먼 섬>이 발간됐다는 걸 알았다. 책의 띠지에는 작가 정미경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란 말이 붙어 있었다. 남편인 김병종 화가가 그녀의 작업실에서 원고를 발견했다고 했다. 나는 한 문장 한 문장, 그녀가 글을 써 내려갔을 시간을 느끼며 느리게 <당신의 아주 먼 섬>을 읽었다.

 

 

,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

정미경 작가의 소설에는 유난히 슬픔을 간직한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처음 그녀의 소설을 접했을 때는 그런 인물들의 슬픔을 고스란히 공감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진 이야기라 느꼈다. 그때로부터 고작 열세 해 정도를 보냈을 뿐이지만, 여러 일을 겪으며 나는,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우연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우연들이 슬픔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야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삶에서 조금도 빗겨 서 있지 않았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의 배경은 남도의 한 섬마을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모인다. 정모는 시야가 좁아지다가 결국 시력을 잃고 마는 병에 걸린 이후 고향인 섬으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친구 태이를 잃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우는 엄마 연수의 이끌림으로 정모의 집에서 지내게 됐다. 서커스단에서 지냈던 판도는 이삐 할머니를 따라 섬으로 왔다.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어떠한 말도 못하는 사람처럼.

세 사람이 만나는 건, 이우가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 정신을 잃으면서부터다. 근처 모래톱에 버려진 배에서 줄곧 지내는 판도는 이우가 물에 빠진 것을 알아채고 이우는 목숨을 건진다. 판도는 이우를 업고 정모에게로 향한다.

이들의 만남은 섬에서 이루어진다. 섬은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것 같지만, 문학에서 은 종종 단절을 극복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정현종 시인의 시 에서처럼 말이다.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섬에서 만난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은 이 한 문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처가 덧난 자리, 사람이 오다

정모는 바닷가 소금 창고를 도서관으로 꾸릴 계획을 세운다. 소금 창고는 친구 태원의 아버지 영도의 소유였다. 정모는 태원에게 소금 창고를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며 창고를 내어줄 것을 청했고 어렵지 않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과거 이 섬에서, 연수는 태원과 사귀었고 정모는 연수를 사랑했다. 정모의 아버지는 영도 밑에서 일했는데, 정모 아버지가 소금 창고에서 소금을 챙기는 모습을 본 영도는 들고 있던 대파로 아버지를 내리쳤다. 그 모습을 정모가 지켜보고 있었고 그걸 아버지도 알았다.

정모는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소금 창고에 도서관을 짓는다. 그런 그를 판도, 이우가 돕는다. 그러면서 세 사람은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꺼내 놓는다.

 

슬픔이라는 그릇에 담긴 따뜻함이라면 그 힘으로 당분간은 팔을 돌리며 달려갈 수 있지 않겠나. 어쩔 수 없어 얘길 하게 됐지만, 하고 보니 이 얘기를 누군가 한 사람에게는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 -135p

 

“(중략)태이가 없었다면 더 못 견뎠을 거야. 너한테만 얘기하는데, 염색은, 태이에 대한 오마주 같은 거야. 걔는 나한테 무지개였거든.” -138p

 

정모는 이우에게 자신이 앓는 병에 대해 털어놓으며 마음이 한결 후련해짐을 느낀다. 이우는 판도에게 사랑했던 태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점차 마음을 여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판도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줄 알지만, 실은 판도 스스로가 귀를 막고 입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그랬던 판도가 이우와 만나며 말을 한다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말을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서. 일단 이렇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110p

  

 

우리의 가까운 섬

소금 창고 도서관은 영도의 방해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다. 태원은 영도의 뜻을 전하려 정모를 만난다. 태원은 과학과 효율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모는 느릿한 시간을 이야기한다.

 

“(중략)어릴 땐 몰랐는데, 이 섬이 도서관이야. 시간의 도서관. 백 년 전이 바로 내 발아래 있고 천 년 전이 산자락에 남아 있어.(중략)” -126p

 

정모는 소금 창고 도서관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차질 없이 오픈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에게 여러 변화가 일어난다. 이우는 태이의 아이를 가졌고 이를 알게 된 연수와 실랑이를 벌이지만, 나름대로의 화해를 했다. 영도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 세상을 떠났고 이우는 이삐 할미의 도움으로 태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른다.

소금 창고 도서관이 문을 여는 날, 동네 어르신들은 한곳에 모여 음식을 나누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정모의 음악가 친구들은 도서관에 멋진 음악을 불어넣으며 오픈을 축하했다.

 

어떤 시간은, 그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 어떤 하루는,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이 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게 한다. -194p

  

오픈식 날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이 날 것같은 하루로 묘사된다. 문장의 시점은 현재에 머물지만, 이는 미래로부터 바라본 현재다. 누군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 어쩌면 그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며 도서관 문을 열고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 나눴던 때를 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기억할 것이었다.

이우, 정모, 판도 세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임으로써 치유하고, 도서관이라는 하나의 시간을 쌓아 올렸다. 도서관이 이들에게는 이었다. 타인에게 가닿기를 꿈꿔보는 공간. 나를 돌아보며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현재에 집중하는 공간.

이 섬은 당신의 아주 먼 섬이 아니라 우리의 가까운 섬이다. 아주 가깝지는 않더라도 서로에게 필요한 거리를 지켜주면서 최대한 다가갈 수 있는 지점. ‘우리의 가까운 섬이다.

 

  

잊어버린 것 아닌, 잃어버린 것

한때는 정미경 작가의 소설을 오해했었다. 그녀가 소설로, 죽음과 삶의 가냘픈 경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그녀의 소설을 차갑고 슬픈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당신의 아주 먼 섬>을 읽고 정미경 작가가 누구보다 따뜻한 말들로 생의 의지를 꾸려나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소설은 죽음과 삶의 가냘픈 경계에 서 있다기보다, 삶의 가장 한복판에서 사랑하는 것들에 말을 걸고 있었다.

소설을 읽고 한동안 정미경 작가와 그녀의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의 세계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서, 뒤늦은 아쉬움과 후회, 슬픔 같은 감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기도 했다. 한때 그녀의 소설로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위로를 얻었다는 게 떠올라서.

소설 속에서 판도는 이우에게 고둥을 내밀며 손바닥에 쥐여 준다. 왜 주느냐고 묻는 이우에게 판도는 , , , , , , , , , , , , .”라고 손가락 글씨로 답한다. 이우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 , .”버린 거라고 하지만, 판도는 다시 , .”라고 답한다.

나는 정미경이라는 한 작가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이 그녀의 문학을 잊어버리는 계기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녀의 문학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머물며 하나의 도서관처럼 자리할 거라 믿는다.

독자로서 그녀에게 받았던 위로를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쓰고 보니 깊은 슬픔이 밀려온다.

남겨진 시간 속에서 나는 그녀의 소설을 몇 번이고 읽어 볼 것 같다. 위로받고 싶을 때, 울고 싶을 때, 내 옆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 책장 속 그녀의 소설이 손을 뻗어 줄 것만 같다.

소설 속, 우는 이우에게 이삐 할미는 우는 게 웃는 거라 말한다. 이삐 할미의 말대로 나는 그녀의 소설이라는 넓은 품에서 울면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정미경 작가는 커다랗고 따뜻한, 무엇보다 긴 슬픔을 남겼다.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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