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으러 갑니다 - 노을지는 새벽을 그리며…
이마엘 지음 / 스펙토리 / 2025년 9월
평점 :
품절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서평단 활동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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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으러 갑니다’

작가는 이 책이 많이 읽히기보다는 제대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작가의 그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조심스럽게 책을 읽어 나갔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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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고민하던 어느 날 퇴근길, 어느 가게 앞에 차 2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그 차들은 인도를 침범해있었다. 인도 옆은 바로 차도였고, 차도와 인도는 단차가 한 뼘 정도 있었다. 인도는 겨우 사람 한 명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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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길을 무사히 지나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나갈 수 없었다. 몇 초면 지나가는 길을 다른 길을 찾아 빙 둘러 가야 했다. 인도 위에 세워진 차 한 대는 누군가의 하루를 막고, 누군가의 이동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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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도 분명 어느 한 사람을 무너뜨리고자 그리하진 않았을거다. 그 순간 생각했다. ‘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소크라테스는 ‘무지’에서,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교육’의 중요성에 집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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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인 신체장애보다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가 훨씬 많이 발생한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경우의 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도, 더 크게 무너질 것이며, 하람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장애와 관련된 교육은 특정 집단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가 언젠가 필요로 하는 삶의 교육이다. 장애가 사고로만 온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질병과 노화로도 온다. 살아 있는 이 중 질병과 노화를 피해 갈 이 누가 있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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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을 읽음으로써 평상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단어 하나도 혹시나 상처가 되고 실례를 범할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경험하지 않고서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례인지 감도 안 잡힌다. 혹여 이 글도 어딘가 무례했다면, 저의 의도나 진심이 아니라 ‘무지’를 꾸짖어주시길. 관계자가 있다면, 더 나은 한 걸음을 시작해 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거부? 할 수 없다. 이것이 사지마비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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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내리는 비.

유리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물방울들.

그 흐름마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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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보다 먼저 무너진 건 마음이었다. 병명보다 깊은 절망의 흔적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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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감았다. 마치 어릴 적, 눈을 감으면 무서운 것이 사라질 거라 믿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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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침묵 속에서 자라고, 회복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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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조차도 선택할 수 없는 삶이야말로 더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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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포기라는 단어는 사치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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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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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었다. 몸이 보내는, 가장 단호한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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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내가 알던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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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렇지만, 삶은 불러야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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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은 깊어졌고, 그 무력은 마음의 장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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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삶은, 매일 조금씩 부서지는 나를 견뎌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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