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무기 견인 도시 연대기 3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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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도시 연대기의 3권이 왔다.
2권을 놓으며 언제 번역해서 출간되나 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책이 나오다니.

시간은 흘러 어느덧 톰과 헤스터가 목숨을 건 모험을 했던 때로부터 16년이 지났다.
톰과 헤스터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이제는 그 아이가 이 두 주인공을 모험으로 내몬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내 목숨만큼이나 챙기며 서로의 곁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꼈던 두 사람은 이제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동료 같은 사이가 되어있다.

도시가 움직여 다니며 다른 도시를 사냥하는 견인도시의 역사학자 길드 출신인 톰은 우연한 기회에 헤스터와 삶의 동선이 얽혀버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견인도시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헤스터는 견인도시가 움직여 다니는 맨땅(하지만 문명인은 누구도 맨땅을 밟고 살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인)에서 유랑하며 자기 부모를 죽인 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떠돌고 있던 그야말로 야생의 전사. 그런 두 사람이 목숨을 건 위험을 함께 헤쳐나가면서 어느덧 서로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긴 하지만, 그 둘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은 평화로운 생활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굳건하리라 믿었던, 하나 사실은 얼마든지 깨어질 수 있는 너무나 허약한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 그 모습을 드러내고 둘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정찰을 하다 양에게 풀을 뜯기러 나온 목동과 마주친다. 한 사람은 그 목동이 반란군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발설하면 자신들의 부대가 위험해 지니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목동이 그렇게 할지 안 할지 모르면서 죽이면 안된다고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이 태도를 이 소설의 두 주인공에게 대입시키자면 헤스터는 아무 고민없이 죽여야 한다고 하는 쪽이고 톰은 죽이면 안된다고 하는 쪽이다. 이 둘은 서로의 다름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극복해 낼 수 있어야만 진정한 사랑일까.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해서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할 수 있지만 넣어 두어야 할 일이 있다.
이 이야기는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무기를 만들어낸 문명이 그 무기를 마침내 자기들끼리 죽이는데 쓰면서 일어난 '60분 전쟁' 이후의 지구를 그리고 있다. 이야기가 일어나는 시대에는 '60분 전쟁'의 시대를 '올드테크'라 부르지만 '올드'라 해서 원시적인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들이 만들어낼 수 없는 수준의 기술을 의미한다. 책의 제목인 '악의 무기'는 올드테크가 띄워놓은 가공할 무기로, 3편은 그 무기를 오랜 잠에서 깨워줄 암호를 담은 틴북(깡통책)을 둘러싼 한바탕의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아이가 납치 당하고, 그 아이를 부모가 찾으러 나서고, 도시끼리 서로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견인도시 연대에 반대하는 그린스톰 세력이 전세계를 다시 푸르게 만들겠다는 모토로, 견인도시 연대의 행태와 마찬가지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감행하며 견인도시 연대를 공격한다는 방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다는 것 이외에 이 이야기를 한 권 더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할 즈음, 이야기는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톰을 구하기 위해, 헤스터가 해서는 안될 선택을 했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그 일이 알려진 이상 더는 톰과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헤스터가 톰에게 돌연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이날 여태까지, 바인랜드에서 사는 동안 내내, 당신과 렌과 함께 산 세월 내내 나는... 맙소사, 정말 따분했어!
가, 렌을 태우고 떠나... 난 같이 안가, 톰, 바인랜드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 하지만 나랑 같이는 아니야, 나는 여기 남을 거야.
헤스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이곳은 이제 끝이야.
그냥 추락하고 있을 뿐이야. 죽지는 않을 거야. 저 아래에 타운들이 있잖아, 각박한 사막의 타운들. 고물 수집상들 말이야. 나한테 딱 맞는 곳이지

아, 이 작가, 연속물 쓸 줄 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죽겠다.

사족: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장하준님이 머리 식힐 때 본다고 언급했던 바로 그 책(으쓱).
영국적 문화지식과 언어센스를 가졌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책.
아니면 나처럼 각주를 보고서야 알아듣는 뻘쭘함은 각오하시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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