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1 세계문학의 숲 1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안인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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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작가, 처음 들어보는 책 제목.

요즘 문학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나온 것 같기도 하고 시공사가 야심적으로 시작하는 '세계문학의 숲'이라는 전집의 첫 엔트리라고 해서 궁금하기도 했기에 읽어본 책.

독일어로 현대를 묘사한 가장 중요한 작품, 언어의 정신이 이런 식으로 독자를 뼛속까지 흠뻑 적신 적은 없었다 by 발터 벤야민, 이라는 홍보문구를 흐뭇하게 등에 업고 시작한 독서는 페이지를 넘겨 갈수록 고민에 빠졌다.

자유 연상 기법, 운운하는 소설은 꼭 이렇드라. 누가 말하는 건지도 모르게 주고 받는 대화, 성으로 불렀다 이름으로 불렀다 해서 누구를 부르는 건지 모르겠는 외국 소설의 태생적 장벽(100페이지가 넘도록 우리의 주인공 이름도 잘 모르겠는 나에게도 문제가 없다곤 못하겠고...), 독일어로 현대를 묘사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납득이 갈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주 나오지만 각주가 없이는 무슨 맥락인지 짐작도 못하겠는 그 시대의 유행가, 선전문구 등의 인용, 딱히 두드러진 사건도 안 나와서 더더욱 미궁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 나 이렇게까지 소설과 담 쌓은 독서가가 된 것인가 하는 자괴감, 그래도 세계문학 전집에 이 작품을 집어 넣은 데는 이유가 있을거야. 시공사잖아, 2권까지 있으니 1권을 반만 읽고 포기한다는 건 말도 안돼 등등

그러다가 180쪽 정도 읽었을 때 서서히 입질이 온다. 그래그래, 이제 슬슬 시작이구나. 그래, 이렇게 뭔가가 있어야 읽지, 나만 어렵고 힘들었던거 아니지? 이 이야기를 끌어가려고 이때까지 판 깐거지?하는...

전후 독일을 배경으로 한, 여자친구를 홧김에 죽도록 두들겨 팼다가 결국 그녀가 죽음으로써 살인죄로 형을 살고 나온 한 남자의 인생이 또 다시 시대적, 개인적 물살에 휩쓸려 가는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경험은 그 경험 자체로 알게 모르게 나를 변화시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해가면서 이 fiction을 읽었다. 심오하게는 소설이란 문학이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해대면서...

그것은 책 한권을 읽고, 지금 세상을 읽을 한뼘의 지식,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한줄기 위안 등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from hand to mouth) 독서를 하는 자의 한계일 것이다.

내 능력의 한계 때문에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도살장의 묘사나 잘못 얽힌 인간 관계 때문에 파멸로 치닫는 삶의 모습을 표현한 부분을 보면서는, 그래 언어가 달라서 묘사하는 방식이 낯설긴 하지만 뭘 말하는지는 참 알겠는 문장. 이런 것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문장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외국 문학을 읽는구나 싶기도 하고.

100권짜리 시리즈물이라 하니 불쑥 도전 의식이 느껴진다.

대학 전공을 무엇으로 선택하느냐 하는 선택이 대학 4년이 지난 후 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영원히 바꾸어 놓는 것처럼 믿음직한 출판사의 에디터들이 고르고 골라 내어놓는 세계 문학 시리즈를 통독하는 경험이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자, 날 바꿀 수 있으면 바꿔봐! 라며 나를 내어놓는 느낌?!

같은 바느질 취미를 가져도 내복, 장갑, 조끼 같은 실용적인 물건이 아니면 만들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자와 아기자기한 모빌, 인형을 만드는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마음의 간극. 그 간극을 넘어서기 위한 도움닫기를 시작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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