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하이드님의 "쉿! 여자, 책읽다. "

책의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겼는데..하이드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더 기대됩니다. :) 저도 땡스 미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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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verso > 당당해지기 위한 잠깐의 각성제

고향집에 가느라 기차를 탈 때면, 금세 읽어버리고 멀뚱거리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히 두꺼운 책 한 권은 꼭 준비해야 마음을 놓곤 했다. 물론 기차를 타다 보면 잠이 오기 일쑤라 책 한 권을, 그것도 두꺼운 것으로 읽어치우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무의식이 책이란 내 옆에 앉을, 낯선 사람들과의 어색한 대화를 피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손에 무엇인가를 잡지 않으면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괜히 옆 사람에게 미안해지곤 한다.

여하튼 그리하여 이번에도 고향 역 앞 홍익문고에서 책을 골라야만 했는데, 알고 있는가. 킬링타임용 대중소설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곳은 나름대로 좋은 책들의 보고다. 기차를 타면서도 책이 필요한, 흔치 않은 독서광들을 의식한 처사가 아닐까 싶은데, 정작 나는 그 좋은 책들 중에서 생전 처음으로 이 노골적인 제목의 처세서를 골라 들었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남인숙, 랜덤하우스 중앙).
물론 많은 이들이 좋은 책과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할 것이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 책을 집어들었을 때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여자, 인생, 20대라는 단어가 조합해 낸 민망해질 수 있는 제목의 궁극이라니! 그럼에도 이 책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은, 내 나이 스물일곱에, 곧 있으면 결혼을 앞둔 오랜 룸메이트와 찢어져 달랑 보증금 천만 원을 들고 거리로 나앉을 형편인데다, 현금으로 SM3를 덜컥 사버린 고등학교 동기 녀석이 둘이나 되는데 비해 이 더운 여름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느라 아침부터 땀으로 목욕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조금 나빠져 버린 건강 탓에 아주 비극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비극적인 마음에, '그래, 나도 이 책 하나로 마음 고쳐먹고 인생 역전하는 거야'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물론 아시다시피, 이 책 하나로 인생 역전은 힘들다. 물론 또,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처세술의 99%는 이미 읽기 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바이다. '친절하고 차분하되, 언제나 준비하며 당당할 것. 그것이 여자의 인생을 결정 짓는다.'  노골적으로 '여성'을 지칭하는 이유는, 남자들이 비교적 '실력'에 의해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가는 데 반해, 여성의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라는 말을 여과 없이 해 대는 이 책을 끝까지 읽기란,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웬만큼 무시하지 않고서는 아주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느라 현실 감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라면, 나도 한번 욕심이란 걸 가져봤으면 좋겠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라면, 이 책이 일시적이나마 각성제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현실 감각 없는 여자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 저자가 드는 예를 읽다 보면 여우 같이, 악착 같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게, 이 책이 책값을 하는 대목(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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