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화문 연가 - 그때 그 시절... 노래와 함께 걷는 서울의 추억 서울의 풍경들
이영미 지음 / 예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노래 한 곡 불러본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노래, <광화문 연가>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
언덕 밑 정동 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지난 2월 14일 작고한 고 이영훈 씨가 연인들의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을 절제된 서정성으로 잘 묘사한 노래다.
이문세 씨 특유의 낮은 음색이 쓸쓸하게 더해져
더욱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기며 오래 사랑받고 있다.
흔히 <광화문 연가>를 사랑 노래로만 듣지만
잘 들여다보면 노랫말 속에는 1980년대 서울,
특히 광화문 덕수궁 주변을 재현하고 있다.
이 노래 덕분에 한때 연인들 사이에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파다했고,
그럼에도 연인들은 반신반의하며 다정하게 손을 마주잡고
데이트를 즐겼다.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가지만 정동길엔
숱한 역사를 기억하며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는 새문안교회,
돌담길을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는
이 노래가 변함없이 사랑받는 것처럼 세월을 잊고 그대로다.
그곳에서 지나간 인연과 기억을 그리워하고,
추억 속의 그 노래를 다시 불러보며 혼자만 아는 미소를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이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가요 <광화문 연가>와 같은 제목의 책 『광화문 연가』가 출간됐다.
저자는 한국 대중가요에 깃든 사회사를 탐색해온 문화평론가 이영미 씨.
서울 토박이로 25년을 살다가 이제는 여러 이유로 ‘서울을 들락거리며’ 살면서
때로는 ‘징글징글’해 하기도 하지만
‘나의 살던 고향’ 서울에 대한 애정이 쉽게 변할 리 없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노래 싫어하는 이 있을까.
대중가요와 함께 서울의 근현대사, 그 시공간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광화문 연가』는 1920년대 식민지시대의 경성에서부터
2008년 서울까지 넘나들며 서울 거리의 변화와 시대상을 흥미롭게 분석했다.
묘하게도 우리나라의 도시화가 시작된 시공간이 1920년대 경성이기도 해서
책은 대중가요의 역사를 담는 한편,
도시 욕망의 변천사와 그곳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변화하는 삶을
대변하고 있다.
종로 네거리에 엿장수 가위 소리가 울리던 1920년대,
서울역의 등장과 함께 ‘에누리조차 안 통하는
근대적 냉랭함’을 경험하기 시작한 1930년대,
한국전쟁과 함께 미아리고개를 탄생시킨 1950년대,
1950년대 ‘명동백작’의 고상함과 달리 연예계의 화려함과
‘런던 소야국’ ‘아리조나 카우보이’ ‘이태리 정거장’ ‘모로코 사랑’ 등
이국적인 분위기에 매료된 사람들이 충무로를 풍미했던 1960년대를 거쳐
통기타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1970년대의 대학가,
혜은이 씨의 「제3한강교」를 시작으로 강남 시대를 연 1980년대,
압구정동과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신세대를 등장시킨 1990년대를 지나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한 목소리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던
2000년대까지 서울의 한 세기 조금 안 되는 시간을 내달린다.
세대를 넘나들어 공감하기도 하고,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매력 많은 책이다.
저자는 직접 노래를 작사․작곡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노래와 관련 있는 장소를 답사하기도 하면서
‘내 고향 서울’의 다채로운 면모를 재발견했다.
그 과정에서 ‘내 고향 서울이 더 이상 괴로운 곳이 되지 않았으면,
더 망가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고 고백한다.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가자.
2008년 6월의 광화문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동길을 다정하게 걷던 연인들은 이제 촛불을 들고 거리를 걷는다.
<광화문 연가>는 또 다른 노래로 대체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의 역사는 이렇게 노래와 함께 계속 흐르는 중이다.
『광화문 연가』의 출간 소식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