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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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규칙 이종 소설가라는 별명을 가진 작가 박민규. 온라인 서점에서 저자 사진을 보는 순간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거니 느낌이 온다. 호기심에 다른 사진을 찾아보면 마주하게 되는 선글라스의 향연. 박민규 작가는 2003년 등단한 이후, 그의 독특한 선글라스만큼이나 특이한 문장 구성과 신선한 상상력으로 유명하다.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200812월부터 20095월까지 온라인 서점 예스24 블로그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연재 당시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 대화문과 지문의 구분이 없다. 처음에는 답답해 보이지만 실험적인 줄 바꿈과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적은 대화가 색다른 재미를 준다.

또 다른 묘미는 곳곳에서 나오는 유머러스한 지문이다. 피식피식 웃다가도 뼈를 때리는 감각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처음부터 꾸준하게 등장하는 요소가 있는데 세 사람의 단골 맥줏집 <켄터키 치킨>의 입간판이다. ‘HOF’‘HOPE’로 잘못 적은 간판을 소설에서는 줄곧 '희망'이라 부른다. 바람에 흔들리듯 깜빡깜빡하던 ‘HOPE(희망)’가 사라지고 ‘HOF’만 남았을 때 는 뼈아픈 상실을 경험한다.


80년대 중반 서울, 긴 무명 생활 끝에 하루아침에 인기 배우가 된 아버지는 어머니와 를 버리고 떠난다. 슬픔에 빠진 어머니와 떨어져 홀로 생활하던 나는 친구의 권유로 백화점에서 주차 요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유쾌해 보이지만 첩의 아들이라는 아픔이 있는 요한과 누구나가 꺼리는 못생긴 외모의 그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셋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영원하게 보였지만 외모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그녀는 를 떠났고, 요한도 마음속 어둠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요양원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몇 년이나 의식불명에 빠졌던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수소문 끝에 그녀를 만나러 독일로 향한다.


소설 속 그녀는 외모로 인한 상처로 끊임없이 위축되는 인물이다. 누군가 말을 걸면 당연히 못된 장난일 거라 의심부터 한다. 그런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에게 보낸 편지에는 기적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제 행복만 남았는데 그녀는 를 떠난다. 기적과 같은 사람에게 못생긴 자신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도 자신을 부끄러워했고, 결국 스스로 행복에서 멀어졌다. 글의 마지막에 독일에 건너가 그냥 <여자>로 살 수 있게 된 그녀는 그제야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되찾았다. 그리고 비로소 와 함께 하는 행복을 선택한다.


재산, 성적, 지위, 인맥, 능력 등 소설 속 외모같이 우리를 위축시키는 요소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생각하며 남과의 비교에 집중하고 나를 잃어버린다. 이런 현실에 계속 치이다 보면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고,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기 어렵다. 작가는 말한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라고.

이 소설은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한 남자의 러브스토리이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나와 나, 당신과 당신의 러브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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