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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명언 악당의 명언
손호성 지음 / 아르고나인미디어그룹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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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사의 명언은 아니지만, 음미할 만한 어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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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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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특한 아이디어와 빠른 이야기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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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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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이라고 하는 30대의 스웨덴 블로그 작가의 첫번째 소설, "오베라는 남자"는 2012년에 발표된 소설로 원제는 스웨덴어로 "A Man Som Heter Ove".


 

이 소설을 소개하는 인터넷서점 홈페이지의 광고 앞부분에 나오는 인상적인 문구는 "스웨덴에서 온 까칠한 할아버지".


그런데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 '오베(OVE)'는 분명히 59세라고 했는데,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게 합당할까? 요즘 세상에 59세 남자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무척 섭섭해하는 눈흘김을 당하지 않을까?

손주를 볼만한 나이임에는 틀림없으니 할아버지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 취급을 받기에는 아직 너무 팔팔한 나이.


그렇다. 가는 곳마다 '빌어먹을'과 '망할' 원칙을 내세우며 사사건건 따지고드는 오베는 "쉰 아홉짤" 먹고도 여전히 피가 뜨거운, "오베였던" 그 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청춘이다. 그래서 그의 자살은 이웃집 여자 파르바네(이란출신 임신부)의 방해 때문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원칙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자살에 이르기까지 오베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 아버지는 목숨을 잃고, 열정을 바쳐 쌓아올린 그의 집은 불에 타 없어지고,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버스 전복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임신한 소냐는 유산을 하고 나머지 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이 된다. 그러고도 모자라 소냐는 암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난다.


오베의 삶에 있어서 소냐와 집을 짓는 일은 존재의 이유이자 칼라풀한 인생 그 자체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그에게, 열정을 다해 지은 집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에게 인생은 흑백이었다. 그런 그의 인생에 그가 첫 눈에 반한 소냐가 더해지고 그녀를 통해 집을 짓는 일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베에게는 소냐와 집짓는 일이 인생의 색깔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던 것. 하지만, 색깔이었던 소냐와 집짓는 일까지 모두 잃어버린 그는 다시 흑백이 되었다.

잃다. Lose

소냐와 집을 짓는 일은 그에게는 사랑(LOVE)의 대상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그들을 잃었다는 것은 세상을 전부 잃은 슬픔이요,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 것.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되었던 무언가에 대한 사랑(LOVE)은 없어지고 흑백이 되어버린 그의 이름 석자 오베(OVE)만이 다 타버린 재처럼 남은 것.


그래서 그는 아내 곁으로 가려고 한다. 흑백이 되어버린 자신이 색깔을 되찾는 길은 소냐 곁으로 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래서 그는 자살을 기도한다. 그것도 네 번씩이나.

마루 천장에 목매달기, 자동차에 배기가스를 채워 질식사 하기,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기,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 소냐의 아버지가 남기고간 라이플(소총)로 자살하기.


하지만, 그 어떤 자살시도도 성공하지 못한다. 매번 앞집에 새로 이사온 가족과 특히 이란출신 임신부 파르바네의 방해 때문이다.


파르바네는 씩씩하고 매사에 열의에 찬 모습이 죽은 소냐를 닮았다. 자살을 기도하는, 아직은 너무 팔팔한 59세 오베 곁에 나타난 파르바네는 어쩌면 '아직은 자기곁에 오는 것이 너무 이른 때'임을 알려주려고 소냐가 보낸 천사라든지 메신저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철학자 니체의 말이 생각이 났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는 그의 책에서 '허무주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해서 이렇게 충고했다.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의  삶을 살 것."


낙타는 책임지는 삶을, 사자는 세상의 부조리와 부패에 맞서는 용기 있는 삶을, 어린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삶을 말한다.


소설 속에서 과거에 "오베였던 남자"와 현재의 "오베라는 남자"는 한결같이 낙타와 사자의 삶을 살았던 남자다. 오베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고 항상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부조리나 부패를 두고 보지 못하는 정의로운 남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냐와 일을 잃고 흑백이 되어버린 그는 소냐와 일이 없어져버린 허무의 세계에서 아직 자신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채로 남겨져 있다.


열정의 아이콘 파르바네와 철 없는 이웃들은 오베가 어린아이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촉매제 같은 존재들이다. 오베는 그들 이웃에게 낙타와 사자의 삶을 가르쳐주고, 대신 자신은 어린아이의 삶을 배워간다. 낙타와 사자의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덧입혀진 어린아이의 삶은 온전한 사랑이다. 그래서 오베라는 남자의 마지막 모습은 이웃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으로 자신을 충만하게 채우고 간 남자로 기억된다.

 

그렇게 오베(OVE)는 갔지만, 사랑(LOVE)은 남았다.

 

 

원글출처: http://www.ilovehealth.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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