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 영화사에 길이 남을 프랜차이즈인 스타워즈 시리즈는 재밌게도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SF 영화와 '옛날 옛적에'라는 표현의 병행이라니. 꼼꼼히 따지면 어쩐지 괴리감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그러나 처음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위화감이 적은 이유는 아마도 저 A long time ago, 혹은 '옛날 옛적에'라는 표현이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접해온 모든 이야기가 바로 저 표현에서 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동화라고 부르는 것, 혹은 신화라고 부르는 것, 판타지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옛날 옛적' 이야기, 혹은 거기로부터 전승되어 온 이야기, 그 전승을 통해 각색된 이야기, 그 각색을 통해 새로운 장르로 진화된 이야기들이다. 대표적으로 '반지의 제왕'만 봐도 그렇지 않나. 호빗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탄생한 종족도 있지만 그 배경을 이루는 엘프니, 드워프니, 드래곤이니 하는 것들은 전부 신화, 혹은 전승되어 온 이야기에서 등장한 존재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이영도 작가의 '새 시리즈' 중 '도깨비'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존재들이고 아주 멋지게 판타지 캐릭터화된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오직 달님만이는 보다 한국적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정확히는 보다 전래 동화 같은 텍스쳐다. 출발점으로 선택한 '인신 공양'이라는 소재부터가 판타지라기 보단 전래 동화 같은 느낌이 강하다. 물론 '인신 공양'이라는 소재는 전세계 민간 전승, 민담, 설화 등에서 줄곧 등장해온 소재이며 신화 뿐 아니라 심지어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에도 인신 공양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니 이것 만으로는 '전래 동화' 느낌이라 할 수 없겠지만 여기에 '자매', '호랑이' 같은 요소가 덧붙여지면서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인신 공양 관련 민담을 떠오르게 만든다. 재밌는 부분은 이 지점인데 다분히 한국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출발 지점이지만 또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보편적인 출발 지점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소재의 보편성 덕분에 이 출발점은 한국적이면서도 한국만의 것이 아닌 한국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도 충분히 친숙한 출발 지점이 된다.

 물론 인신 공양 소재가 안쓰여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 변형된 형태로 굉장히 빈번하게 사용되어져 왔다. 우리나라 판타지에서 한 나라의 공주들이 줄창 이웃 나라 왕이나 귀족에게 시집가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과 눈이 맞아 구원을 받는 상황들이 어떤 측면에선 인신 공양의 확장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보다 직접적으로 인신 공양 소재를 사용한 경우는 언뜻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굉장히 훌륭한 소재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읽다 보면 판타지 장르가 지극히 '장르문학화'된 지금 상황에서는 얼핏 판타지 소설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 읽다보면 민담을 소재로 한 민담의 재해석으로 여겨지지 한국형 판타지라는 느낌으로는 잘 안 와닿을 수 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의 가치가 작품 속 인물들이 마법을 사용하고 칼을 휘두르는데 있지 않은 것처럼 이 작품도 나는 그런 맥락에서 오히려 그런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판타지 장르가 굉장히 라이트 노벨화 한 지금 상황에서 오히려 '문학'에 더 방점을 둔,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한국적 요소를 가미하여 '인신공양'이라는 소재를 채택한 잘쓰여진 현대'문학'이라는 것이 이 작품에 대한 내 평가다.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계에서 참 오랜만에 나온 좋은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