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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류진 작가님의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만으로 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조회수가 수십 만이 넘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호기심이 일었다. 무심코 잠깐 시간을 때우려 클릭한 글이었으나, 곧 글에 빨려 들어가 쉼 없이 읽었다. 그 후 작가님의 글이 문예지나 매거진에 실리고, 인터넷 연재가 시작되었을 때는 따라가서 읽기 시작했다.
장류진 작가님의 글은 읽기가 무척 쉽다. 단어가 분명하고 문장에는 리듬감 마저 있다. 그리고 읽고 나면 묘한 탄성이 나온다. 그리곤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른다. “나도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네.”
내가 겪을 수 없는 일이나 생각지 못한 일을 일깨워주는 글이 좋을 때도 있지만, 요즘 같이 살기 빡빡할 때는 결코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글에서 위로를 받는다.
<잘 살겠습니다>는 결혼을 앞둔 '나'와 결혼을 할 예정인 빛나 언니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청첩장을 주게 된 자리에서 빛나 언니는 결혼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 그게 어떠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와 빛나 언니는 계속 연락을 취하며 알던 사이가 아니라는 점과 무엇보다 '나'는 빛나언니를 결혼식에 부를 예정도 아니었다는 것이 그렇다.
'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세상 사는 이치를 잘 알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에 비해 빛나 언니는 순진하고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앞 날이 걱정되기만 한 어딘가 "비범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 공감을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기 때문이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어느 순간 그렇게들 살고 있다. 만 원짜리 밥을 얻어 먹으면 만원 짜리 커피를 사야하고, 축의금으로 오만 원을 내면 조의금으로는 오만 원이 들어온다. 내가 받은 돈은 내 돈이 아니고 나중에 나갈 돈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빛나 언니는 그런 것들을 모른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여태 볼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상당히 무구한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생각이 많은 나로선 빛나 언니같이 눈치 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종종 부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저렇게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어진다고 할까.
그와 동시에 모든 일에 열심이고 적극적인 주인공 '나'에 대해 묘한 선망을 느꼈다. 저렇게나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는구나 싶어서. 취직 후 연차가 조금씩 쌓이면 쌓일수록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다. 이직은 지능순이라는 말에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현재 하는 일에도 만족하고, 여기서 더 열심히 해봤자 수많은 사람들이 다 열심히 하기 때문에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합리화하는 면도 있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다보면 내가 부끄러워진다. 나는 '나'처럼 뭔가 내 현실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나?
어느 한 쪽 편에 서지 못하고 '나'와 빛나 언니를 동시에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악인과 선인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 모두를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소 빛나 언니가 답답하고 거북할 때가 있더라도, ‘나’가 너무 계산적이고 딱 잘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모두 저건 내가 아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머나 먼 세계가 아닌 내가 아는 세계를 그리고 있기에 장류진 작가님의 글을 사랑한다. 그 글을 통해 이해 받고, 힘을 얻는다.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일단 나부터 잘 살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