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을 드러내고, 용변처리를 맡기고, 음식을 받아먹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이 쇠해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 또는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시간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두려움이다. <크로닉>은  그런 마음 속으로 조용히 들어와 삶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한줌의 희망도 보여주지 않은 채 매몰찬 결론을 내리고 사라진다. 날것 그대로의 인간은 한없이 고독하고 삶과 죽음에 의미 따윈 없다. 영화는 지독히도 염세적인 세계관을 담담하게 읊조린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입 밖에 내어 말하기 꺼리는 그것을. 


데이빗은 이 모든 것을 경험으로 체화한 인물이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환자를 성심성의껏 돌보지만, 그의 눈빛은 공허하고 그의 삶은 껍데기만 남은 무덤이다. 그는 환자의 삶을 자신의 그것에 투사시킨다. 그리고 그 힘으로 버틴다. 환자들은 데이빗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데이빗에게는 지푸라기와도 같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데이빗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다. 그 도움이 삶이든 죽음이든 상관은 없다. 어차피 삶이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뿐이다. 그조차 항상 뜻대로 되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팀 로스를 처음 만난건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서였다. 도둑의 오른팔로 나온 그는 양아치의 완벽한 체현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 이미지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좀 안타까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진지한 모습으로 등장해서 반가웠었다. 나에게는 "완벽"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크로닉>에서도 그는 텅 빈 집과 같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작은 몸집과 평범한 생김새에 짙게 묻어있는 공허함은 많이 건조하게 표현되었음에도 강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제목인 chronic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은 극 중의 환자들을 향해 쓰였다기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러하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 같다. 언제 어떤 모양새로 닥쳐올지 모르는 삶의 끝으로 천천히 향하고 있는, 그러나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내일도 여전히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엔드 크레딧이 올라올 때 뭔지 모를 감정에 눈물이 터졌다. 생각해보니 그건 안쓰러움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저 안쓰럽다. 선택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고 기우뚱거리는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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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
앤드류 포터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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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Authenticity는 한국어로 이해하자면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게 변하는 단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진정성이라고 해석되기도 하지만, 원래, 본래, 또는 진짜라는 성질을 뜻하기도 한다. 사실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한때 정치인을 가리켜 "표리부동하지 않음"이라는 뜻을 가진 수사로 많이 사용된 까닭에 혼동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어쨌든 이 책은 "진정한 것들"을 향한 욕망에 대한 비판서로 보면 될 것이다. 


현 시대는 근대성의 여러가지 측면에 부정적인 가치를 매기고 그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행처럼 힘을 얻는 공간이다. 개인주의, 소비주의, 기술의 발전, 자연의 파괴가 가져온 인간의 소외는 자연으로 돌아가자거나 소박한 삶을 살자는 등의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언뜻 당위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현상에 저자는 이견을 제시한다. 그러한 욕망에는 근대화 이전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향수가 묻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이야말로 진정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잘못된 가치판단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원시적 삶이 조화롭고 평화로웠을 것이라는 낭만적 상상에 대해 저자는 인류학적으로 보아 완벽한 헛소리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근대화가 가져온 인간의 소외에 대해서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근대와 어떻게 관계맺음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근대화의 특징을 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일단은 종교 속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사회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무너지면서 조화로운 세상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환멸이 생겨났다. 그리고 세상은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배당받던" 곳에서 개별적 개인이 모인 집합체로 변했다. 개인주의가 생겨난 것이다. 개인주의는 경제적 개인주의인 자본주의로 이어졌고, 이는 의미와 가치가 있던 자리에 시장 교환이라는 허무주의를 가져다 놓으면서 소외를 발생시켰다. 저자는 루소가 이 소외를 극복할 방법으로서 제시한 대안이 현재까지 우리가 근대화와 관계맺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루소는 인간이 타인을 의식하기 시작하게 된 것을 문명사회에 내재된 악의 근원이라고 보는데, 이는 곧 남과 비교를 하고 우위에 오르려 하는 이기심을 낳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소외가 발생하며 그것은 개인이 좀 더 강하고 자족적인 존재로서 주류와 투쟁하는 외로운 반항아가 되는 것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루소의 해법이다. 물론 저자는 이 방법이 근대화와 조화롭게 화해하는 길을 막는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의미없어진 현대의 예술 분야에서 주류에 반해 원본의 아우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작품보다 작가의 이름값을 상표로 삼아 거래하는 판매전략에 넘어가는 현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소비에서는 저항적 소비문화가 베블렌 효과에 의해 과시적 소비로 귀결되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제 유기농도 한물이 갔고 로컬푸드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스스로를 과다하게 노출시키는 것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인정해달라는 욕망의 표출로 해석된다. 정치인의 진정한 모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결국 그들로 하여금 허위로 진정성을 꾸며내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세계화 시대에 외부와의 교류가 없는 문화를 진정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 또한 그 안에 속한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예능 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얼"에 대한 강박도 이런 맥락에 속한다. 결국 진정한 것들에 대한 욕망은 환상의 산물이거나 원치 않던 문제들을 일으키는 경향을 보인다. 


저자는 시니컬하고 사카스틱한 어조를 구사하며 근대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선을 비판하고 근대 외부에서 진정한 것들을 찾으려는 욕망을 허상이라고 규정한다. 여기까지는 시대 상황을 잘 읽어내고 핵심을 제대로 끄집어낸 분석이라고 본다. 자연적인 것과 문명적인 것 사이에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개입시키는 오류를 나 역시 종종 본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단순한 환상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어젠다가 되는 것을 보면 당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저자 역시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근대와 화해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면서 논리는 급작스럽게 빈약해지고 현실타협적으로 나간다. 자유주의와 세계시민주의가 마치 모든 것의 해결책인 양 추켜올리는 모양새는 너무 나이브해 보이고, 종종 인간의 이성에 대해 무한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거센 비판과는 배치된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해 주로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가져온 불균등과 불평등의 정황을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어떻게 세계시민주의 같은 것을 역설할 수 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뼛속까지 자유주의자인 듯한 저자는 전근대적 세계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분노와 억압으로 고통받던 수많은 이들의 숨통을 터준 권리와 자유를 해치는 사회질서를 완벽한 것으로 이상화하며 갈망해서도 안 된다"고 했지만, 그 자유가 지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누구를 위해서 이용되고 있는지 또한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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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나 2016-06-07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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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고 앉아있네 3 -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 스낵 사이언스 Snack Science 시리즈 3
원종우.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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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자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밝히는 학문이 양자역학이다. 그런데 왜 전자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가 중요할까. 전자들 사이에는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있고 이것을 전자기력이라고 한다. 전자기력은 중력, 핵력과 더불어 사물의 운동을 만들어내는 4가지 힘들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손으로 책을 밀어 위치를 옮기는 힘은 전자기력이다. 책을 구성하는 원자의 전자와 손을 구성하는 원자의 전자가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손이 책을 통과하지 않고 책이 밀리면서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학은 운동에 관한 학문이다. 그래서 양자역학은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 된다. 

그런데 양자역학 이전의 고전역학(예를 들어 뉴턴의 운동법칙)도 운동에 관한 물리학이다. 그렇다면 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양자(quantum)는 불연속적인 알갱이라는 뜻이며 에너지의 최소단위라는 성질을 갖고 있다. 에너지의 최소단위가 알갱이, 즉 입자라는 것은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띄엄 띄엄 떨어진 상태로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에너지가 입자성이 아닌 파동성을 갖고 연속적으로 흐른다는 고전역학에 위배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양자역학은 어떤 물리적 객체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다고 말한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자연이 그렇게 '말도 안되게' 생겨먹은 것이다. 양자역학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상식'에 위배되는 성질을 자연이 갖고 있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에 인간은 '이해'하기 전에 그 사실을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3>은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처드 파인만)는 양자역학을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설명한다. 일단은 고전역학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보통 이중 슬릿 실험부터 시작하는 기존의 '쉬운' 설명 방식과 달리 아주 친절하고 유용한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이 어떻게 기존의 역학과 다른지에 대해서 간명하게 알 수 있고 그로써 양자역학이 물리학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는 유명한 이중 슬릿 실험으로 들어가서 전자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님을 보여준다. 이로써 물리학은 결정론에서 확률론과 불확정성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거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자역학의 이러한 특성은 20세기 초반 모더니즘의 도래와 함께 세계를 보는 인식론적 시각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계는 더이상 완성되고 안정된 하나의 단위가 아니라 파편화되고 상대화된 불안정한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확률성과 불확정성의 문제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를 통해서 설명된다. 예를 들어 전자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전자를 맞고 튕겨나온 빛을 봐야 하는데, 그 순간 전자는 빛의 에너지에 의해 움직여버린다. 즉 '관측'이 전자의 위치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위치를 정확히 알려 하면 할 수록 큰 에너지를 가진 빛을 써야 하고, 이는 전자의 속도가 불확실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아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이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고전역학에서는 위치와 속도가 가장 중요하며 임의의 순간 두가지가 확실히 결정되어 있어야만 운동이 이루어져 우주가 굴러간다고 설명하는데 여기에 위배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치와 속도를 단지 확률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뒤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거쳐 다중우주까지 설명을 이어가면서 '관측'의 문제를 다시 한번 다룬다. 그리고 관측에 의해서 상태가 변한다면 과연 '실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는 양자역학과 시공간의 문제를 짧게 다루면서 책을 끝맺는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4> 는 3의 심화버전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론 자체의 심화라기 보다는 양자역학의 역사와 관련 과학자들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정보를 다루는 것이 주요 골자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3에 등장하지 않았거나 아주 짧게 언급된 양자도약이라든가 양자얽힘 등의 개념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 비판에 대해서도 넉넉하게 다뤄준다. 그러면서 다시 실재나 실체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우주는 실체가 없다는 입장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우주를 알기 위해서는 우주 밖으로 나가서 관측해야 하는데 우주는 바깥이 없기 때문이다. 그 밖에 양자 컴퓨터의 원리에 대해서도 짧게 설명해준다. 

영자역학에 대해 간결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과학하고 앉아있네 3> 만 읽어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좀 더 가지를 쳐서 관련된 이런저런 이론에 대해 알고 싶다면 4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다가도 조금 생각하다보면 줄줄이 의문부호가 이어지긴 하지만 양자역학 입문용으로는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얇고 쉽게 읽히니 부담 없이 사서 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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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부상 - 인공지능의 진화와 미래의 실직 위협
마틴 포드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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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부상>은 인공지능과 그의 외연인 로봇이 주로 미국의 산업, 특히 고용과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소프트웨어 개발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어 논지를 전개시키는데, 그래서인지 자동화와 산업의 관계에 대해 유기적이라기 보다는 다소 결과론적인 분석에 치우치는 경향은 있으나 전반적인 추세를 가늠해보기에는 무리가 없는 편이다.

저자는 일단 자동화의 물결이 제조업, 서비스 산업, 농업 분야 등 저임금 직종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고용불안의 측면에서 개괄을 한다. 그리고 나서 2차대전 이후 1948년부터 1969년 사이에는 신기술 도입이 성장과 고임금이라는 결실을 맺었으나 그 이후에는 전혀 다른 경향을 나타내고 있음을 소득 감소, 고용시장의 양극화 등 7개 동향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원인을 정보기술과 컴퓨터를 통한 자동화 및 세계화, 금융업의 확장, 산업의 탈규제화에서 찾는다.

정보기술은 저임금 직업 뿐만 아니라 고숙련 노동자들까지 위협한다는 데에서 기존 기술의 발전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그 원인은 정보기술의 지적 능력에 있는데, 빅데이터, 기계학습, 딥러닝 등이 가져오는 자동화는 화이트 칼라 직업 분야에서까지 노동집약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대안으로 자주 제기되는 인간과 기계의 협력을 위한 교육 - 예를 들면 컴퓨터 기술 배우기 - 의 미래도 역시 비관적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그리고나서 그간 기술발전에 의한 타격의 무풍지대였던 교육계와 의료계에 미치는 정보기술의 영향을 언급하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새로운 산업 기술로 3D 프린팅과 무인자동차를 들어 그것들이 경제와 고용시장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이 부분은 대략적으로 보아 인공지능에 관한 다른 책들이 다루고 있는 내용과 크게 차이가 있진 않지만, 좀 더 자세한 데이터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화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제, 경영적인 시각을 확대하는 데에는 도움을 준다.

다음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부의 불평등 문제에 접근한다. 일단 자동화는 고용률을 떨어뜨리고 이는 소득과 그에 따르는 수요에 영향을 미쳐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이를 무시한 채 전체적인 성장만을 중시하는 경향을 비판한다. 이는 지속적인 번영에 필수적인 활달하고 광범위한 시장 수요를 결국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사실상 이 책의 주제이다.

이 모든 비관적 미래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을 대체하기보다 보완할 기술을 발명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동화가 가속화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시장경제에 내재하는 기본적인 인센티브를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예로 기본소득의 도입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전통적 의미의 복지국가를 확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로 의욕을 꺾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적당한 인센티브를 주는 효율적 사회 안전망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그리고 재원확보를 위해서는 탄소세를 사용하거나 법인세율을 인상하거나 최고 소득층으로부터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하는 방법을 개인소득세 인상보다 좋은 전략으로 제시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본소득은 단지 "좌파의 급진적 주장"이 아니며, 인공지능 시대의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 자체의 유지를 위해서도 앞으로 반드시 도입이 필요한 제도로서 논의되어야 한다.

<로봇의 부상>은 현재 쏟아지고 있는 인공지능과 그것이 미칠 영향에 관한 서적들 중 아마도 경제, 경영적 상황에 대해 가장 폭넓게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주로 미국의 예를 들다보니 간혹 생소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긴 하지만 큰 흐름을 보고자 한다면 별 지장은 없다. 인공지능이나 로봇 자체에 대한 정보보다는 그것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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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딥러닝 - 인공지능이 불러올 산업 구조의 변화와 혁신
마쓰오 유타카 지음, 박기원 옮김, 엄태웅 감수 / 동아엠앤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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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한 개론서격인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첫번째는 <인공지능과 딥러닝>. 이 책은 상당히 쉽게 인공지능이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해놓았다. 우선 인공지능에 대한 여러가지 정의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인공지능의 역사를 1차, 2차, 3차 붐을 기준으로 서술하는데, 이 부분이 책의 몸통이라고 보면 된다. 1950년대 후반-1960년대의 제1차 붐에서는 탐색트리 방식을 통해 추론을 위주로 하는 '툴'로서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실행되었으나 단순한 '게임' 이외에 현실의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는 벽에 봉착하면서 수그러들게 된다. 이후 제2차 붐인 1980년대에는 컴퓨터에 '지식'을 넣으려는 시도가 행해지면서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연구가 발전하였으나 지식의 방대함을 무한정 컴퓨터에 다 담을 수는 없었던 한계로 인해 다시 암흑기가 왔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제3차 붐에서는 컴퓨터가 그 지식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만드는 방식인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 시작되어 인공지능 연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 책은 이 부분에 대해서 2장을 할애해 기계학습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방식과 딥러닝이 동작하는 방식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설명한다. 딥러닝에 대해 기초적인 것을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부분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인공지능이 강인공지능으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현재의 약인공지능이 산업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즉 어떤 직업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해 살펴보면서 책을 끝맺는다. 종종 일본식 번역투가 좀 거슬리지만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며, 현재 나와있는 인공지능 관련 서적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은 다음에 <인공 지능은 뇌를 닮아 가는가>를 읽는다면 인공지능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장착하기에 꽤 괜찮은 수순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좀 더 학술적인 느낌이 강하다. 내용에서나 수사에서나.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해 실용적으로 접근한 앞의 책과 달리 (인공)지능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책을 이끌어가는 기본축으로 작용한다. 그 밖에 연대순이 아니라 주제별로 구분해서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구별된다. 물론 일단은 인공지능의 역사에 대해 짧게 기술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그리고 나서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산이론과 튜링 이론, 기계 학습을 통해 던져본다. 다음 장에서는 계산주의와 연결주의를 대립시켜 설명하면서 인공지능이 지능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일라이자에서 딥블루까지 대표적인 인공지능 기계들과 그들의 작동방식을 소개하며 인공지능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과연 강인공지능이 가능할지의 여부에 대해 생각하며 책을 마친다. 간혹 대중적이지 않은 용어 선택과 서술 방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기도 하지만 아주 정석적이고 깔끔하게 잘 쓰여진 책이다. 


요약하자면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학습을 하는지 쉽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인공지능과 딥러닝>을 읽으면 되고,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각종 노력과 그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인공 지능은 뇌를 닮아가는가>를 읽으면 된다. 그리고 둘 다 읽으면 인공지능의 역사와 의미와 작동방식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얻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있게 되었을 경우 일어날 일들을 어떻게 규제하고 조정하느냐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인간은 필요 없다>를 읽어보는 것도 좋다. 이 책에서는 인공지능을 법인화해서 책임 소재를 두어야 한다든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경우 직업대출(job mortgage)이라는 대비책이 필요하다든지 하는 식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출처] 인공지능에 관한 책 두권|작성자 콩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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