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 과학과 그 너머를 질문하다 작은길 교양만화 메콤새콤 시리즈 3
박영대.정철현 지음, 최재정.황기홍 그림 / 작은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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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에서 호킹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원리를 발견해내려 노력한다.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의 눈으로 봐서 그럴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만한 것이 아닐까. 단 하나의 원리가 아니더라도 과학은 정립된 이론에 대해 신뢰하는 정도가 인문학에 비해서 훨씬 큰 것 같다. 특히 물리학쪽에서는. 그게 어떤 경우에는 맹목적이거나 폐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게 과학의 정의이자 역할일까.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토마스 쿤이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을 찾는 여정을 담은, 즉 유명한 <과학혁명의 구조>를 쓰는 과정과 그 뒷 이야기들을 그린 만화책이다. 쿤은 과학사 연구를 통해 답을 얻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보아 그러하였듯이 지금 정론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론도 언젠가는 부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상대주의라는 비판도 받게 된다. 그러나 쿤은 과학에서 무엇이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같은 것은 없다고 보았다. 정상과학의 시기에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은 과학자들 사이의 논리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지 어떤 외적 진리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관찰과 실험에 의한 경험적 결과물로 진공상태의 이론처럼 여겨졌던 과학에 사회적인 요인이 개입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이루어낸 것이 쿤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패러다임은 정상과학, 즉 기존의 이론을 부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면 위기를 겪게 되고 급기야는 혁명적으로 전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과학은 연속적이라기 보다는 이렇게 단절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한다는 것이 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단절'이라는 개념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고전(뉴턴)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도 고전역학이 적용되는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에 대해 모든 자연현상을 단일한 원리로 풀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며 실제로 그런 이론은 없고 언제나 다양한 이론이 공존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정상과학'이라는 개념에도 사실상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은 '탈(포스트) 정상과학'의 시대라고 부르는 경향도 있다. 유전과학, 인간복제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과학 분야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과학이 단지 실험실에서만 머물 수 없고 사회적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탈정상과학 보다는 과학만능주의가 강세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왜일까. 과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보면 이미 정립된, 혹은 '동의된' 이론에 대해서는 한치의 의심도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를 흔히 볼 수가 있다. 의심은 곧 무지로 조롱받는다고 하면 나름 적절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물론 워낙 어려운 이론들이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그러니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그 점이 바로 과학을 움직이지 않는 상아탑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과학과 과학 외적인 지식이 만나는 접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점을 잘 파악해내서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나름 '유행'인 이 이 시대에 과학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일 것인가를 먼저 묻고 보는 일도 그래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이런 목적에 잘 부합하는 책이다. 과학에 관심이 있고 과학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은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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