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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계절 - 박혜미 에세이 화집
박혜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1월
평점 :
애쓰는 마음 가득한 겨울에 만난 ‘사적인 계절’
꿰맨 책등 덕분에 완전히 펼쳐지는 따듯한 마음들이 스스럼없이 마주 앉는다. 우리는 아무런 소리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잊은 것이 많아 할 말이 많지 않았던 나는 처음엔 그저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한참을 듣다 보니 잃은 줄 알았던 것들이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보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어쩌면 보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그림 안에서 기척을 한다. 나는 이제 무엇에 대해 끄덕이고 있는 걸까.
“온종일 한 장면만 생각하다 책상 앞에 앉아. 이건 펜이 좋겠어, 이건 색연필, 이건 물감. 선은 면이 되고 기억이 되어 빈 종이 위에 가지런히 겹쳐 포개지고, 마음은 손이 되어 종이 위로 충만이 가득 차오른다.”
때문인지 박혜미 작가님의 그림은,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은 살아있다. 살아서 말을 건다. 누구보다 우선 나와 긴밀해지기를, 있는 그대로 사이좋게 겪어 나가기를. 다정한 우체부의 환한 얼굴로, 스스로 발신인이자 수신인이 되어주라고 다독인다.
“ 어쩔 수 없는 차선을 선택하면서도 잊지 않고 창틀에 놓인 식물에게 물을 주는 것, 창문을 열어 멀어지는 것들을 살피는 것, 책상 앞에서 고정된 시간을 보내는 것, 매일 걷고 달리는 것, 현재를 미루지 않고 보내는 것, 그렇게 어제 위에 오늘의 발걸음을 포개 걷다 보면 지금의 차선이 최선이 되는 날도 있겠지. 그러니 아직은 모자란 나를 인정하고, 다시 걸어야겠다. 오늘을 그려야겠다. 언젠가의 풍경을 위해서.”
나의 하루하루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행여 인정해 주는 이 없더라도 분명한 사실임을.
”그때 알았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좋아하는 것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좋아‘가 세 번이나 들어간 따듯하고 귀여운 문장을 또 또 읽는다.
내가 받은 이 위안을 소중한 이들과 나눠야지, 다짐하는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