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제목부터 낯설다. 표류에 관한 이야기라는데 [15소년 표류기]나 [하멜 표류기]등은 책으로 읽기도 하고 제목도 수없이 들어 봐서 익숙하지만 [표해록]은 전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서양고전은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생각해서 누군가 서양고전에 대해 질문했을 때 답변하지 못하면 부끄러워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고전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반성할 일이다. [표해록]은 조선 성종때 최부가 제주도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바다를 표류하다가 중국에 상륙한 뒤 갖은 고생 끝에 조선으로 되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일본 스님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와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3대 중국여행기로 꼽히는 책이라고 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의외로 흥미진진해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과정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고 왜구로 오인받아 갖은 고초를 겪는 과정도 최부 일행과 같이 마음졸이며 지켜보게 되었다. 그밖에도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가 닥쳤을 때 그에 대한 사람들의 가지각색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라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 문제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사람의 탓만 늘어놓는 사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 등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자신과 수십명의 수행원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데도 끝까지 상복을 벗고 관복과 관모를 갖춰 쓰는 것을 거부하는 최부의 모습에서는 그 당시의 '효'에 대한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비록 지나치게 융통성없고 고지식해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린이들이 읽기 쉽도록 원작을 새로 다듬어 쓴 책이라 중간중간 자상하고도 상세한 해설이 삽입되어 있어서 조금은 감동했다. 이렇게 친절한 책을 읽어본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오랜만에 교실에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다 읽고 나니 문득 원작이 궁금해져서 완역본이라고 되어 있는 책을 찾아봤더니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다. 언제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한번 도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