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넌 도대체 누구냐? - 현역 장교의 러시아군 비밀노트
정정현 지음 / 박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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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들 소련에 공부하러 간다.”아버지가 동네 이웃에게 하신 말씀이다. 2006년 경상도 시골마을에서는 아직도 ‘러시아’보다는 ‘소련’이 입과 귀에 익숙하다. 북한의 남침을 도와준 나라, 공산주의 종주국, 냉전으로 인해 일명 ‘적성국가’로 분류되어 입국이 불가했던 나라다. “니 아들 ‘빨갱이’되는 거 아니고?”마을 어르신들에게, 그리고 당시에 군생활 하던 한참 선배들에게 농담 반 진담반으로 들었던 말이다.

 1990년 러시아와 외교관계 수립 후, 구소련이 붕괴된 지 30년도 넘게 지났지만 한국전쟁을 직접 겪었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에 게 러시아는 아직도 ‘소련’이고 공산주의 국가, ‘빨갱이’의 나라다. 하지만, 2023년이 된 시점에서 러시아는 최소한 생소한 나라는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현대·기아 자동차, 팔도 도시락, 오리온 제과 등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며, 시베리아 횡단철도, 에너지 개발 협력 등 이익을 상당히 공유할 수 있는 나라다. 정치적으로도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주변국으로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다.

 문화적으로는 어떤가? 우리의 K ? POP, K - BEAUTY, 러시아 대학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학과가 생겨나는 등 우리나라 언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다. 우리 국민 인식 속에서도 막연한 나라의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국전쟁과 냉전이 초래했던 러시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해소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군사 분야에서는 어떤가? 우리는 러시아 군과 군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직도 ‘소련’, ‘빨갱이’, ‘공산주의’, ‘부도난 나라’의 배고픈 군대로 인식하고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까? 혹은, 서방의 관점과 평가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안보 관련, 군사 분야에서 러시아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국가다.

 첫째로, 주변국 중 하나다. 유사시 직·간접적으로 한반도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나라다. 구한말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지금까지도 변함없다. 통일 과정에서 그리고 통일 이후에도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을 군사 강국이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잘 알아야 한다. 활용하든지 경계하든지 모르면 대책이 없다. 우리 군은 미군의 편제와 편성을 모방하였다. 그래서 미군의 조직체계와 전술을 거의 답습하여 가져왔다. 한·미상호방호조약을 맺은 동맹으로서 연례 연합훈련을 하기에 타 국가 군대와 비교할 때 상호 이해의 정도가 높다.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을 보더라도 러시아보다 더 다양한 연구와 소개가 이뤄져 왔다. 하지만,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m는 아직 그 기반이 넓고 깊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군사 및 안보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둘째로, 군사과학기술과 전술 분야에서 미군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냉전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주요 무기체계로 보면 미국을 제외하고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핵무기, 정밀유도무기, 극초음속미사일 등 전쟁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전략무기는 미군조차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실제로 90년대 불곰사업으로 도입된 T - 80 전차와 헬기, 대공 로켓 등은 우리 무기체계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방산 분야에서 협력과 군사과학기술 교류에 비교적 우호적인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셋째로, 북한군과 그들의 전술을 이해할 수 있는 ‘키(key)’를 쥐고 있는 나라다. 아직도 북한군 전술과 무기체계는 ‘소련’산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열심히 북한군 전술을 연구한다. 그 출처는 탈북 군관 진술, 국외에서 수집한 북한군 교범 등이 대부분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 관점(전술)으로 북한군 전술을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러시아 제병협동군사대학에서 수학하던 시절, 모든 강의에서 북한군 전술이 바로 여기에서 전해졌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여전히 북한은 러시아 무기체계를 쓰고 있다. 성능을 개량하더라도 무기체계를 활용하는 개념과 방법(전술)은 일맥상통하기 마련이다.

 다년간 러시아 현지 생활과 러시아 민간 및 군사대학에서 유학하면서 군인의 관점으로 러시아라는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현장에서 느낀 점은 아직 러시아인들은 미군과 동맹인 우리나라 군인에 대해 경계하고 있음을 느꼈다. 진심으로 다가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제한된 여건에서도 ‘용러(用露)’하기 위한 기초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공개된 자료를 수집하여 읽고 연구하였다. 또한, 기회가 될 때마다 러시아군 고위급 간부가 방한하면 안내와 통역, 회의 준비도 맡았다. 러시아에서 5년간 유학과 출장, 군사외교 현장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이 책에 기록하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로는, 지인들로부터 러시아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전쟁은 언제쯤 끝날까요?” “세계에서 군사력이 두 번째로 강한 나라가 맞나요?”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나요?”군인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로 물어본다.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좀 더 실상을 알고 싶은 사람, 기업가, 외교관련 업무 종사자, 국제 정치 연구자 및 학생들을 위해 준비된 대답을 이 책에 써 보았다.

 전쟁은 언젠가는 끝난다.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정상화, 전후 재건 사업, 에너지 분야 협력, 외교관계 재설정 등 또 다른 위기와 기회가 온다. 그래서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바로 지금, 러시아를 제대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모쪼록 이 책을 통해 러시아 군과 문화 전반을 이해하여 독자들의 삶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자 정정현은 현육군 중령(현역)학 력⦁육군사관학교 제60기 졸업⦁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정치학 석사)⦁러시아 푸룬제 제병협동대학(군사학 석사)경 력⦁육군사관학교 러시아어 강사⦁군 각급 제대 지휘관 및 참모/교관⦁러시아 군사외교분야(교류활동 및 통번역) 활동⦁러시아 군사분야 연구*저술, 학술세미나, 교범 번역 및 감수, 육군본부 러시아 군사연구회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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