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최태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오늘날 복잡성이 증대한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민주주의가 효율을 따지기보단 구성원의 정치적 참여를 우선하는 제도임을 강조한다고 해도 거기 내재하는 제도적, 현실적 역설은 남는다. 그것이 이 책에서 지적하는 역설들이다.

 이 책의 제2장에서는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인 대의제의 대표 개념을 둘러싼 역설들을 살펴본다. 대표의 본질, 선거 공약에 대한 책임, 관료의 대표성, 시민참여, 당사자, 대표되지 않는 것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며, ‘감춰진 세계’의 ‘작은 자’들이 대표되기 어려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역설을 꼼꼼히 따져본다.

 제3장은 정부의 역설을 말한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정부는 결코 공정하지만은 않다. 정부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 가운데 풀고 싶은 것을 취사선택하며,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적 원칙을 지키는 문제에서 자신을 예외로 두는 역설적 태도를 보인다.

 제4장은 조직과 민주주의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역설을 다룬다. 특히 ‘영혼 없는 공무원’ 문제를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우리는 공무원의 소극적인 행위와 태도를 비판하는 동시에 그들의 자의적인 행동에도 제약을 걸고자 한다. 시민과 공무원 간의 이러한 역설적인 마음의 관계를 섬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제5장은 민주사회에서 리더의 존재가 어떤 역설을 발생시키는지를 다룬다. 리더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은 흔히 권력 자체를 좇는 특성이 있고, 권력은 그들을 쉽게 부패시킨다. 이런 권력추구자들은 선거에서 민주적 정부의 무능력을 조롱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얻어 바로 그 정부의 수장으로 선출되지만, 민주적 원리와 마음을 쉽게 파괴하곤 한다.

 제6장에서 ‘민주주의의 마음’을 제시하면서 저자는 먼저 민주주의가 제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균형과 견제, 투표, 다수결, 헌법 등이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향하고, 민주적 가치를 담는 마음이다. 저자는 기존의 사회과학이 인간을 합리적, 이성적 존재로만 가정하면서 마음의 문제를 놓쳤다고 분석하며, ‘마음이 곧 우리’라는 마음의 총체성을 강조한다.

 제7장의 주제인 ‘작은 공’은 사회적·정치적 존재의 단위를 이상적인 개인 혹은 문제 해결자로서 국가로만 설정해온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 삶의 기본 단위에서 공공성의 단위를 재구성해보자는 맥락에서 고안된 개념이다. 저자는 ‘작은 자’들의 다양한 결사체인 ‘작은 공’이 여럿 모여 서로 이어지면서 만들어내는 공공성의 가치에 주목한다. 서로 과도하게 같아지지 않으면서 권력적 억압을 배제한 이 공동체에서 민주주의의 역설을 극복할 희망을 발견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결국 이 책은 다양한 형태의 역설에 대한 논의를 통해 우리 삶의 복잡함을 드러내는 것, 세계를 단순화하는 행동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감추어진 세계에 주목하는 것, 우리에게 세계의 모든 문제를 풀 능력이 부재하다는 점을 살펴보는 것, 그러는 가운데 찾을 수 있는 겸손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멋진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찰을 도모하려 한다. 치열하고 섬세하게 희망과 대안을 찾되 겸손하게 경청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며 민주주의와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공적인 마음이야말로 그 동력이 된다는 점을 예리하게 통찰한다. 친절하고 호소력있는 어조와 행정학자로서의 실제적인 감각이 빛나는 이 책이야말로 동료 시민들을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저자 최태현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법학(학사)과 행정학(석사)을 공부하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정책계획학(공공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집단의사결정, 거버넌스, 정책결정을 연구하는 한편, 공공성, 행정윤리, 정책서사에도 관심을 두고 연구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과학적 지식이 생산되는 방식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싶어 『모두를 위한 사회 연구』를 썼고, 제도와 마음의 공공성을 주제로 쓴 논문으로 2019년 한국행정학회 학술상(논문 부문)을 수상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연구하며 교육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