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시티피케이션 -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의 해부학
코리 닥터로 지음, 박희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멋있게 들리던 때가 있었다.

무엇이든 플랫폼이 되면 미래가 될 것 같았고, 세상은 더 편리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 편리함은 너무 당연해졌고, 나는 그 편리함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코리 닥터로는 이 현상을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사용자를 모을 때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시장을 장악한 뒤에는 사용자와 판매자, 노동자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며 플랫폼이 점점 망가져 가는 과정.

처음엔 낯선 단어였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아, 내가 이미 겪었던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나는 오랫동안 이용하던 쿠팡을 탈퇴했다.

계기는 쿠팡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과 관련해 MBC PD수첩에서 다룬 쿠팡의 두 얼굴을 본 날이었다. 영향력 있는 한 기업의 태도와 책임 회피가 내 소비를 바꿨다.

아이를 키우며 로켓배송의 편리함을 누구보다 잘 누렸던 사람으로서, 더 이상 예전처럼 이용할 수 없었다.

컬리도 새벽배송은 분명 편리했지만, 어느 순간 문 앞에 쌓이는 포장 상자를 보며 ‘이 편리함의 비용은 누가 치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이용이 줄었다.

몇 달 전에는 10년 넘게 사용하던 어도비도 정리했다.

캔바와 미리캔버스로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해졌고, 환율때문에 오르는 구독료도 부담스러웠다.

결정적으로 구독을 해지하려는 순간, 연간 구독자라는 이유로 10만 원이 넘는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때는 단순히 불쾌한 경험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겪은 일들은 각각의 사건이 아니라, 플랫폼이 성장하며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조였다는 것을.

책을 읽는 내내 “뭐라고? 이것도? 애플도? 구글도? 아마존도?“를 반복했다.

저자의 문체는 시원시원했고, 방대한 내용을 사례와 함께 풀어내다 보니 454페이지의 분량이 생각보다 훨씬 술술 읽혔다.

저자는 엔시티피케이션을 멈추기 위해 경쟁, 규제, 상호운용성, 그리고 테크 노동자의 권력이라는 네 가지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 소비자는 선택권을 잃고, 선택권을 잃은 순간 플랫폼은 더 이상 사용자를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

규제 역시 필요하다.

기업의 성장을 막기 위한 규제가 아니라, 시장의 균형과 소비자, 그리고 노동자를 함께 보호하기 위한 규제 말이다.

아마존 배송기사들이 생리현상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감시받는 현실을 읽으며, 우리나라 쿠팡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다시 떠올랐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플랫폼도 더 많아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을 거부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주도권만은 잃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빅테크를 비난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편리함 뒤에 숨은 구조를 이해하고, 소비자인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만드는 책이다.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플랫폼이 나를 사용하게 두지는 말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