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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서 나이 들 수 있을까 - 끝까지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노후 설계 수업
박한슬 지음 / 더퀘스트 / 2026년 3월
평점 :
끝까지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노후 설계 수업
『내 집에서 나이들 수 있을까』
글 짓는 약사 박한슬 저자의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삶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묻게 만든다.
제목이 참 끌렸다. ‘내 집에서 나이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안에는 누구나 바라는 존엄과 두려움이 함께 들어 있다.
책을 단숨에 읽었다.
아마 내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3년 전 엄마가 쓰러진 뒤 기능장애와 인지장애로 요양병원에 입원했었다.
처음에는 한 달 정도 집에서 재택 간병인을 모셨다. 하지만 약물 부작용으로 망상과 섬망 증상이 심해졌고, 간병인이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그만두겠다고 했다. 결국 요양병원 입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우리 가족의 중심이었던 엄마가 갑자기 아픈 것도 충격이었지만, 이후 순간순간 결정해야 하는 모든 일은 두렵고 무서웠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장기요양 4등급을 받았고, 병원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간병인은 조선족이었으며, 하루 10만~12만 원에 이르는 간병비는 반드시 현금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이해되지 않고, 버거웠다.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장면은 다인실을 담당하던 간병인이 성인용 기저귀를 사오라고 했을 때였다.
깔끔하던 엄마에게 그 순간은 단지 불편함이 아니라 존엄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다행히 엄마는 반년 가까운 고통 같은 시간을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책의 시선으로 보자면 ‘재활’에 성공한 노인이다.
하지만 오진이 바로잡히기까지 10개월 남짓의 시간은 내게 분명한 질문을 남겼다.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야 하는가.
그렇게 책은 내가 그때 몰랐던 것들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왜 간병 현장에 특정 인력이 많은지, 장기요양보험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 왜 재활병원이나 요양병원은 환자가 원한다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닌지.
막연히 답답하고 억울하고 혼란스러웠던 장면들이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의 중요한 점은 단순히 제도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것은 돌봄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과 시설 중심이 아니라 자립과 회복, 유닛케어와 지역사회, 그리고 ‘내가 살던 자리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관점을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위해 내 집에서 나이들고 싶다는 마음이 더 또렷해졌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려면 나를 환대하는 공간과 환대하는 사람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 공간이 내 집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결국 동네 공동체와 지역 참여, 느슨한 연대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더 절실히 느꼈다.
얼마 전에는 다정한 쪽지와 맛있는 케이크가 문 앞에 걸려 있었다.
나도 딸기 한 팩과 쪽지를 들고 처음으로 윗층에 올라가 보았다.
윗집과의 느슨한 연대는 그렇게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나는 곧 이사를 가지만, 이런 작은 연결이 결국 함께 나이들어갈 삶의 바탕이 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최근 시댁 형님이 생활지원사 일을 시작했다.
요양보호사와는 또 다른 역할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형님은 사람을 돕는 일에서 오는 보람이 커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돌봄은 단지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이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네이버지도 사용법을 알려드렸더니 유용하게 쓰신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생각한다.
나이든다는 것은 기능을 잃어가는 일만이 아니라, 익숙한 삶의 자리 안에서 계속 살아갈 방법을 지켜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부모의 노년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노후를 아직 멀게만 느끼는 사람에게도 꼭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4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평균수명은 길어졌지만, 잘 늙는 법에 대해서는 너무 늦게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부모를 위해서도, 결국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 정도 나이부터는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 분명 있다.
노후는 언젠가 닥치는 사건이 아니라, 지금부터 설계해야 하는 삶의 방식이다.
『내 집에서 나이들 수 있을까』는 그 준비를 두렵게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더 인간답게 나이드는 길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