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꽃이 피면 바지락을 먹고 - 그릇 굽는 신경균의 계절 음식 이야기
신경균 지음 / 브.레드(b.read)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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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만났을 때 제본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쥐었을 때 표지가 코팅되어있지 않고 웜그레이 색상이라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펼쳤을 때 180° 도가 젖혀진다. 오!! 찢어질까 봐 놀랐는데 튼튼했다. 책 읽는 내내 페이지가 넘어갈까 봐 붙잡을 필요도 없고 눌러서 문지르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런 모양의 사철 제본 방식은 표지에 합성비닐을 사용한 특수 가공을 없애고 합성 접착제 사용을 최소화하여 환경 오염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와 꼭 맞춤한 것 같아서 탄성이 나왔다.

저자는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성실하고 까다롭게 좋은 것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좋은 흙을 찾는 이야기부터 그릇을 구워 식히는 이야기가 계절음식 이야기와 함께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뜨거운 불을 오래 보면 각막이 상하기 때문에 눈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말에 먹는 것도 그릇 만드는 일의 일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싱싱한 것을 먹고 흙, 나무, 물, 불 온통 살아 숨 쉬는 재료를 다루어 그릇을 만드는 일 이렇게 만들어진 그릇은 제철에 나는 것으로 만든 음식을 담는다. 이 모든 일이 일 년 내내 둥글게 둥글게 돌아간다.

"전통이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발판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과거에만 갇힌다면 전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61p)" 하고 저자는 말한다. 전통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변화에도 거침없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작업할 수 없는 장마철이면 가마터를 찾아 비에 쓸려 드러난 오래된 도자기 파편을 보러 다니고 비가 억수같이 올 때면 커다란 자석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 물길에 세워두고 흙에 섞을 철을 수집한단다. 작업할 수 없는 때에도 할 일을 찾아다닌다니! 일 년 내내 도무지 쉼이 없어 보인다.
"계절에 맞게 음식을 하려면 일단 부지런해야 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성실하고 까다롭게 좋은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릇 만드는 데 필요한 좋은 흙과 유약 불 때는 나무와 불도 다르지 않다. 그릇 굽는 일도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까다로워야 한다. (007p)" 저자와 그의 가족은 일 년 내내 부지런하게 그릇 만드는 일을 하고 계절마다 나는 나물과 열매 버섯을 기다리며 밭과 마당을 돌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의 이름이 참 많이 나오는데 같은 식물도 계절따라 성질이 달라져서 조리하는 방법도 곁들이는 양념도 달라진다니!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글을 읽으면서 한참 상상을 하고 있다가 불쑥 사진이라도 나오면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이 책은 출출한 한밤중에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로 분류해야 할듯싶다. 모든 사진이 한 페이지를 꽉 채우고 심지어 두 페이지에 가득 나와 요리를 좋아하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이 틀림없다. 글을 쓰는 지금은 입추와 처서의 한가운데인데, 단짠단짠 호박 스테이크를 따라서 해 먹어야지 하고 마음먹은 참이다.

먹는 채소는 대부분 기르고, 기를 수 없는 것들을 산다고 한다. 집 근처의 장이 네 군데 인 데, 장이 서는 날이 겹치지 않아서 거의 매일 장을 가게 된다는 그의 장 보는 모습을 떠올리는 아내와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눈을 반짝이며 펄펄 날아다닌다"고. "식자재를 고르는 과정은 먹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도자기 빚을 흙을 발견할 때처럼 말이다."하고 눈을 반짝이는 속내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스스로 나물덕후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었는데, 역시 장르를 불문하고 덕후는 좋아하는 것을 맹렬하게 할 때 정말로 멋진 것 같다.

그릇을 만들고 그 그릇 위에 계절마다 나는 신선한 재료를 구해다가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이웃과 함께 나눠 먹으며 충분히 계절을 느끼는 삶. 고단하지만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나물 하나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까막눈이다. 장안덕과 곶감 동치미국수를 지나 홀린듯이 다시 첫 페이지를 열게 되듯이 책을 보다보면 당연하게 새콤 향긋한 봄나물 무침이 간절하다.
여름의 끝트머리에 서서 벌써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가슴속에 진달래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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