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道 - 전5권 세트 상도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이윤이다. 

이윤. 기업의 총수입에서 일체의 생산비, 곧 지대()·임금 및 이자 등을 공제한 잉여소득. 

이 책은 조선시대 후반기, 그러니까 조선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정조가 죽고, 안동 김씨니 경주 김씨니 풍양 조씨니 반남 박씨니 하는 특정의 소수 가문이 정권을 좌지우지 하던 때, 그야말로 민초들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던 시기에 그런 쟁쟁한 가문 소속도 아니었지만, 조선 제일의 부를 일군 임상옥을 소재로 하고 있다.  

소설은 한평생 바퀴에 매달려 살았던 거평 그룹 회장 김기섭이란 인물이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사고사한 것으로 시작된다. 소설가인 '나'는 김기섭의 유품에서 나온 의문의 인물 임상옥을 만나게 되고,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나로서는 임상옥이라는 인물이 그 당시 실존 했었는지 아니면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인지 완독한 지금도 분간하기가 힘들다. 물론 믿을 수 있는 몇 가지의 기록이 임상옥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그렇지만, 저 천박했던 세도 정치기에 더구나 평안도 지역을 강타했던 홍경래의 난의 시기에 임상옥이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부를 획득했는지가 궁금한데, 그건 자세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냥 오로지 홍삼 무역하나로만 밀어붙이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이 좀 더 재밌으려면 임상옥이 부를 획득해 가는 과정이 더욱 실감나게 그려졌어야 했다.  

작금의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것은 획득한 부를 올바르게 쓰는 '상도'가 아니다. 이윤 추구가 지상 최고의 가치가 된 지 오래다. 벌어라, 더 벌어라, 그리고 굴려라, 더욱 크게 굴려라. 돈은 자꾸 굴려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외쳐댄다. 굴려야 하는 건, 그래서 더욱 크게 만들어야 하는 건 바로 삶인데 말이다. 더욱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관심에 없다. 오로지 더, 더, 더 만 외치고 있다. 왜냐? 그건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만족 없이는 삶도 없다. 굴러가는 돈만 있게 될 뿐이다. 

'상도'의 재미는 무엇보다도 임상옥의 스승인 석숭 스님의 세 가지 비책이다. 고승은 훗날 일어나게 되는 일도 척척 맞추는 예언자라는 다소 맥빠지는 아이디어다. 여튼 석숭 스님은 건네준 세 가지 비책을 통해 임상옥에게 닥쳐오는 인생의 고비마다 훈수를 둔다. 빤히 보이는 것이지만 그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재미다.  

불가에서는 '공수래공수거'라 했다. 결국 인간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고, 소유라는 것도 다 부질 없는 것이니 다 비우라는 뜻이다. 상도는 다소 진부한,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늘 신선한 그 원칙을 통해 한 때 모든 것을 가졌다가 결국 모든 것을 버린 한 사람의 성공 이야기이다.  

나는 책이란 결국 지금 내 삶과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훗날의 나를 이끄는 힘이 되기도 하고, 이도 아니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나를 잠시나마 만나게 해 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도는 아주 먼 훗날, 혹은 가까운 미래일수도 있을 내 마지막 순간 즈음, 그 언저리에서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나게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조금 씁쓸해졌다. 

아, 그리고 이 책에서 얻은 소중한 기쁨이 있다. 그건 바로 김정희라는 잘 아는 것 같으나, 실상은 잘 모르는 인물을 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김정희를 알기 위해 관련된 책을 몇 권 구입할 예정이다. 하나의 책이 다른 책과 연관되어 있고, 독자는 그 연결선을 따라가니, 책이여, 오, 성스러운 행렬의 너는 참 매혹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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