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 탄생
필립 아리에스 지음, 문지영 옮김 / 새물결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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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발명되었다!’라는 표지에 적힌 자극적인 문구가 단도직입적으로 책을 소개한다.

저자인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ès)’는 심성사 연구에 바탕을 둔 독특한 연구 주제로 내놓는 책마다 아리에스 쇼크라 불릴 정도로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재미있는 역사가이다.

이번에 저자가 주목한 주제는 아동의 탄생이다.

그렇다면 아리에스의 말대로(혹은 한국판 제목대로) 정말 아동(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란 말인가?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나는데 밑바탕이 되는 중요한 시기라 여겨지는 아동기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은 이제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여러 시기에 대한 구분이 16세기 즈음에서야 알려지고 훨씬 후대가 되어서야 일반화되기 시작했다는 아리에스의 놀라운 지적을 주목해야 한다.

영아기-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성인기-장년기-노년기와 같은 인간의 발달 단계가 오늘날과 같이 일반적으로 쓰는 일상 용어가 아닌 완전한 학술 용어였다는 것이다.

 

 

이같이 인간의 발달 단계가 일상 속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일상생활의 잠재적 사고에서 구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5, 16세기에는 자기 나이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이 드물거나 아예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희한한 관행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나이를 분명히 밝히지 않거나 조심스럽게 대답하도록 강요받았다.

나이를 두리뭉실하게 말하는 것이 당시의 예절이었으며, 일반적인 대화법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이를 말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나이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독특한 언급법은 습관적인 관습으로 굳어졌다.

 

 

16세기에서야 번역되기 시작한 라틴어 백과사전 만물의 위대한 소유주가 대중에게 일반화된 나중에서야 인생의 시대 구분이 일상적으로 받아 들여졌다는데 다시 주목해 보자.

그전까지 사람들은 인생의 시기를 특별하게 구분 짓는 용어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나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구분도 모호한 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사회적, 육체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던 아동기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성인으로서의 어른이라는 개념만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어른들과 어울리기에는 아직 너무 유약한 아기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몰리에르의 표현처럼 아주 어린 아이는 완전한 사람으로 생각되지도 않았다.

이 시기를 넘어선 이른바 아동기의 어린이들은 아동으로서의 특별한 위치를 얻는 대신 바로 어른의 세계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중세 사회에는 아동기에 대한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사용하는 아동의 개념은 그 이후에 발견(또는 발명, 탄생)된 것이라고 아리에스는 주장한다.

종전의 역사가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교육서, 예법서, 편지, 일기, 판화, 초상화, 회화, 묘비석, 조각 등의 각종 자료를 동원하여 아리에스는 이 사실을 증명해 나간다.

이 책의 원제는 앙시앵 레짐 시대기의 아동과 가족의 생활(L'enfant et la vie familiale sous l'Ancien Régime)’이다.

앙시앵 레짐기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 18세기 프랑스가 부르봉 왕가의 지배 하에 있던 구제도 시기이다.

 ‘아동과 가족 생활이라는 말은 그 둘이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리에스는 앙시앵 레짐기의 아동의 탄생을 고리로 하여 17세기부터 일어난 가족 생활의 변화(특히 부르주아 가족 생활의 변화)를 추적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리에스가 말한 아동의 탄생은 특히 프랑스와 주변의 유럽국가의 아동의 탄생을 의미한다.

오늘날에 비추어 봤을 때 우리 사회는 재밌게도 다시 아이를 어른으로 탄생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생기고 있다.

아동과 청소년 사이에 있는 8세에서 14세 사이의 이른바 트윈 세대를 상업적으로 탄생시켜 그들이 어른 흉내를 내고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부추기면서 틈새시장의 상품화 전략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기가 인정되는 사회에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 17세기 도덕론자들의 의식과는 또 달리 아이들의 틀을 설정하여 아동기를 너무도 견고하게 의식화하고 규정한(어쩌면 부정적으로) 오늘날의 사회.

 

책을 읽고나니 여전히 변화하고 진화하려는 아동에 대한 인식에 맞춰 계속 아동의 탄생을 생각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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