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일주일에 걸쳐 천천히 읽었다.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는 게 소설 서사나 문장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책, 마음에 드는 책일수록 느리게 꼼꼼히 반복해가며 읽는데, 이런 독서가 참 좋다. 이 작가의 소설 쓰기 방식에 놀라면서, 이렇게 다양하게 다른 각도로 변주될 수 있구나, 라는 감탄을 하면서, 내 쓰기 방식에도 얼마든지 틀에 구애받지 않고 내 감각대로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구나 싶어 기뻤다. 대개 소설의 한 이야기가 정해지면, 그 길따라, 한 방향으로 정해진 길을 달려가는 거라고, 이제껏 대부분 기존 소설에서 말해왔지만, 이런 오랜 관습을 뒤엎고, 만약, 어떤 우연이 개입된다면의 가정 하에, 앞에 쓰였던 서사와 완전 다른 이야기로 가지 치며 뻗어나간다. 내겐 놀라운 발견이며, 내 글쓰기 스타일과의 친연성을 느꼈다. 허구의 허구, 그 위에 또 허구.

그러니까 나도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실험을 해도 된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은 느낌이다. 이 책은 충분히 훌륭하고, 최근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최고다. 원작의 리듬과 음악을 제대로 살리려 번역한 배수아 작가한테 또 고맙다.

개인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파도를 타고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언어의 결과 확장성에 주목하며 작가의 이력에 만만치 않은 작가로서의 유전자가 세대를 거쳐 이어왔듯, 한 개인 안에는 오랜 세대와 세대 간의 이력과 역사가 내재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설명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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