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jure > 기형도 시를 읽는 밤.
<기형도 시를 읽는 밤> 초대자 명단입니다.

   

드디어 어제 고대했던 '기형도 시를 읽는 밤'에 갔습니다. 

비가 와서 차도 많이 밀리고 신발도 축축히 젖었지만 그를 그리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죠. 

맨 먼저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이 하얀 스크린에 그의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변함없는 스물아홉의 그. 

젊은 그가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스물두 살에 그의 시를 처음 읽었던 저는 이제 마흔두 살이 됐는데 

그는 아직도 저리 젊기만 합니다.   

성석제 작가가 말했던 노안도, 황인숙 시인이 말했던 나잇살도 없는 영원한 청춘의 그. 

(성석제 작가 왈, "나는 보이는 곳에는 나잇살이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는 노안이 있고..." ㅎㅎㅎ)

   

사회는 시인이자 가수인 성기완씨였습니다. 

아주 담백하고 솔직하고 입담좋은 그와 함께 많은 문인과 문우들이 참여해 

기형도의 시와 그에게 바치는 헌정시를 낭독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 나이를 먹으며 시가 발전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기형도의 첫시집(이자 마지막인)에서처럼 

그 청춘의 처음의 유치함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한 함성호 시인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시인의 황망한 죽음 후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부채감에 시달렸다며 담담히 이야기하던 이문재 시인의 말씀들이 좋았습니다.

  

저는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해 무대 앞 맨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행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사진으로 담지 못했지만. 

시들이 낭독되는동안 제 건너편에서 그의 시집을 열심히 읽고 있는 알라디너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20년 전에 산 저의 낡디낡은 그의 시집과 함께 나란히 사진을 올려봅니다. 

(이름모를 알라디너님의 초상권을 침해한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부디 불쾌하지 않으시길 바라며...) 

참, 사회자가 이번 행사에 참석한 많은 알라디너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대신 

이벤트 게시판에 달린 250여개의 많은 리플들 중에 몇 개만 뽑아서 읽었는데 

제일 처음으로 저의 리플을 읽어주셨어요. 순간 가슴이 얼마나 세게 쿵쾅대던지...^^;

  

모든 낭독이 끝난 후 공연이 이어졌어요. 

기형도 시인의 시로 만든 심수봉, 조하문의 노래도 듣고 

백현진씨의 기형도 시인의 '빈집'을 직접 부르는 노래가 곁들여진 퍼포먼스도 보고 

성기완, 한유주, 김남윤으로 급조된 3인조 밴드의 '가수는 입을 다무네'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의 시 '종이달'의 구절들에서 영감을 얻은 노래래요. 

앵콜을 기대했는데 호응이 너무 적었는지 그대로 모든 행사가 끝나서 많이 아쉬웠답니다.

  

행사 후 이리카페를 나오면서 입구에서 팔고 있는 기형도 20주기 기념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샀습니다. 

책의 제목은 1989년 7월 15일 새벽 3시에 제가 라디오에서 처음 들은 그의 시의 제목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고 시작하는. 

이름모를 DJ의 그 낭독을 듣고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던 그 순간을 저는 아직도 또렷이 느끼고 있는데 

어느덧 20년이 흘렀고, 파릇한 청춘이던 저는 중년이 되었네요...  



영원히 젊은 시인 기형도여...그곳은 평안한가요... 

당신의 시를 함께 읽는 밤에 많은 이들이 모였지만, 

정작 주인공이 없었던 그 자리, 그 카페가 

제게는 빈집만 같았습니다...

 

2009. 3. 5 .

j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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