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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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제인 에어>가 처음 출판될 당시 작가의 이름은 ‘커러 벨’이었다. 왜 샬럿 브론테는 남성의 이름을 빌어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었을까.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 문학을 꿈꾼다는 것은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미 몇 편의 작품이 편집자에게 홀대받았기 때문이다. 청교도적인 가치관 아래 여성들에게 절제와 순종을 강요하던 시기였으니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에 대한 <제인 에어>는 당대 영국 사회에 큰 파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첫 작품으로 수많은 화제를 낳은 작품에 대해 독자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어떻게 남성 작가가 여성의 심리를 이토록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커러 벨은 누구일까. 그러나 만약 샬럿 브론테가 필명이 아닌 본명으로 <제인 에어>를 출판했다면 독자들의 평가와 반응은 처음과 크게 달랐을지도 모른다. 


시대에 맞서 브론테 자매가 한 일은 글쓰기였다. 샬럿의 친구이자 전기 작가인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브론테 자매들이 매일 저녁 9시에 모여 작업 중인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특히 "샬럿은 자신이 현실을 묘사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자매들의 평가에 솔깃해서 작품을 수정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고 하니 <제인 에어>도 이러한 자신감과 확신으로 완성했을 것이다. 


<제인 에어>가 대단한 작품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현시대의 관점에서 이 소설에 대한 비판과 논쟁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고전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번에 <제인 에어>를 다시 읽은 것은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읽기 전에 준비가 필요했고, 이론가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의 문제 제기가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이었을 땐 그저 로맨스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던 <제인 에어>에서 계급이 느껴져 실망스러웠고,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한 소재가 불편했다. 특히- 오랫동안 그 누구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로체스터의 부인 버사 로체스터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서인도 제도의 크리올 출신이며 크리올 인은 유전적으로 광인의 피가 흐른다는 설정, 그리하여 버사 로체스터가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대표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다. '빨간 방'에 갇힌 어린 제인의 이야기와 기숙 학교의 실상을 고발하는 전편은 좋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설득력이 떨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온갖 시련을 극복한 제인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외삼촌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부자가 된다는 점은 진부했고 그 막대한 분량의 결말을 이런 식으로 정리해버리니 허무하기도 했다. (그 유산은 노예 무역으로 약탈한 재산이었을 테고.) 


물론, 남성의 지배 아래 수동적인 여성이 사회의 미덕이던 시대에 여성의 자유와 평등에 목소리를 높인 샬럿 브론테의 독창성과 열정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학창 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제인 에어>처럼 완전히 새롭게 느껴질 작품이 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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