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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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Love letter'를 보고 너무 궁금했던 책. 스무 살, 일 년 동안 내가 읽은 책이라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뿐이다. 이후 이 책은 나의 이십 대를 좌우했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포기를 거듭하는 책이라고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읽다 보면 마들렌 일화 말고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 수없이 많다. 알베르틴이 자는 모습이 하도 예뻐서 사람들이 안 볼 때 알베르틴이 예쁘게 자는 연습을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마르셀은 알베르틴의 두 뺨에 노을이 지고 있다는 낭만적인 표현으로 나뿐만 아니라 프랑수아즈 사강도 사로잡았다. 사강도 나와 마찬가지로 '사라진 알베르틴’편을 최고로 꼽았다. 베네치아의 기차에서 어머니와 다시 재회하는 장면도 아름다웠고, 작가 베르고트의 죽음은 굉장히 의미 있게 느껴졌다. 소설 쓰는 것이야말로 평생의 숙명이자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겼던 프루스트와 닮았기 때문이다.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적인 작가다. 정말. (새로운 번역이 궁금하다. 나는 국일미디어로 읽었고, 그 세트를 모두 갖고 있었을 때 상당히 부자가 된 느낌이여서 책꽂이를 바라 볼 때 마다 흐뭇했었다.)


프루스트의 기억 개념은 현재는 주관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특정한 과거에 의해서 새겨진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현재는 과거와 너무나 복잡한 관계에 있게 된다. 프루스트는 인간 의식의 현재 속에 과거가 떠올려지는 것을, 언제 현상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음화에 비유하였다.

알라이다 아스만, 기억의 공간


롤랑 바르트는 바욘(Bayonne) 시절을 추억하며 이곳이 자신에게 있어서 프루스트의 콩브레(Combray)와도 같은 곳이라고 했다. 바욘은 바스크, 스페인, 프랑스 문화가 혼재된 곳으로 바르트가 자신의 지적세계를 구축한 상당히 중요한 장소이다. 콩브레는 프루스트의 자서전과도 다름없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실제 지명은 일리에 (Illiers)인데 훗날 소설의 유명세로 인해 '콩브레-일리에'로 개명되었다.

어린 프루스트는 방학 때마다 줄곧 일리에의 고모 댁에서 보내곤 했다. 이때의 간헐적인 기억이 어마어마한 소설로 이어졌고 소설 전반에 걸쳐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그 유명한 마들렌과 홍차 일화도 바로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다. 콩브레는 시간과 공간이 모두 녹아있는 기억의 산물이다. 자주 읽다 보니 내 머릿속에도 콩브레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프루스트가 그토록 묘사하던 종탑을 보면서 스완네 집 쪽과 게르망트 쪽, 그 두 갈래 길을 또다시 상상해 본다.


"사방 100리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멀리 기차에서 바라보면, 콩브레는 오로지 마을을 요약하고 대표하며 먼 곳을 향해, 마을에 대해, 마을을 위해 말하는 하나의 성당에 지나지 않았고, 또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성당은 들판 한가운데에서 바람에 맞서, 마치 양 치는 소녀가 양들을 감싸듯이, 주위에 모여 있는 집들의 양털 같은 회색 지붕들을 크고 어두운 망토로 껴안고 있었다."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권인 「되찾은 시간」을 읽은 후 처음으로 돌아와 「스완네 집 쪽으로」를 다시 읽으면 프루스트의 치밀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때마다 프루스트의 어머니가 참 궁금해진다. 소설 곳곳에서 어머니의 지혜로움과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프루스트를 연약하고 섬세한 사람으로 키운 장본인이기는 하지만 그를 대가로 성장시킨 대단한 분이기도 하다. 프루스트는 어머니의 죽음이 큰 자극이 되어 이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 평생 동안 자신의 소명이라 여겼다. 바르트도 어머니의 죽음 이후 두 달 만에<밝은 방(카메라 루시다)>을 완성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또 다른 출산으로 이어진다는 건 참 가치 있는 일이다.

3. 플라톤은 사랑으로 결합하는 것(에로스)은 가사자(可死者)인 우리가 불사자(不死者)가 되는 것이라 했다. 이것이 비단 생물학적인 임신과 출산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에로스는 '지혜'의 출산으로도 이어져야 한다. 지혜에 대한 에로스를 어떻게 발현하느냐에 가사자가 되거나 불사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스스로 새겨 넣은 글자들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새겨진 것들이 들어 있는 책이 우리의 유일한 책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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