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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5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주인공 그윈플레인이 자기보다 훨씬 어린 데아를 발견하는 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아마 눈 오는 풍경을 묘사한 문학 작품 중에서 이보다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은 없을 것이다.
콤프라치코스(어린이 매매단)에 납치되었다가 버려진 아이 그윈플레인. 앞으로 살아갈 길이 험난할 것을 예고하듯 그 어린아이가 자신을 구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던 그날은 유난히도 눈이 매섭게 날렸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그웬플레인이 눈밭에서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을 때 반가움이 더 컸을 것이다. 발자국을 따라가던 그웬플레인은 새끼 양이 우는 듯한 소리를 듣게 된다. 위고는 이보다 ‘폐부를 찌르고 비통하며 약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발자국이 사라진 곳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려와 하얀 무덤 같은 눈더미가 있었다. 그 속에서 그윈플레인은 입에 눈이 가득한 죽은 여인과 풀어 헤친 그녀의 가슴팍에서 작은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그윈플레인은 아린 손으로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다시 길을 떠난다.
계속해서 문전박대를 당하던 이 불쌍한 두 영혼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늑대와 함께 마차에 살고 있는 우르수스라는 사내였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애틋하게 다가온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그들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은 책을 읽는 내내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알고 보니 데아는 앞을 못 보는 아이였다.)
참고로 이들의 이름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그윈플레인(Gwynplaine)은 '하얀 평원'(흰색을 뜻하는 gwyn과 평원을 뜻하는 plaine)이란 뜻으로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평원을 가로질러 생환한 사람임을 가리킨다. 데아(Dea)는 '여신'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우르수스는 '곰'이라는 뜻이며 그와 함께 사는 늑대의 이름은 호모, 즉 '인간'을 의미한다.
그윈플레인의 기형적인 얼굴이 조커 캐릭터의 모태가 되면서 유명해졌지만 한동안 <웃는 남자>는 <레미제라블의>의 그늘 아래 있었다. 하지만 출간 삼 개월 전, 위고가 "<웃는 남자>보다 더 나은 작품은 아직 쓰지 못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작품이고, 귀족사회와 하층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레미제라블>과도 비견될 만하다. 심지어 상당한 분량의 장편 소설이지만 인내심을 필요로 할 만큼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위고는 역시 대단한 작가!
눈(雪)은 죽은 여인을 비춰 주고 있었다. 겨울과 무덤은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시신이란 인간으로 만든 작은 얼음덩이이다. 벌거숭이 젖가슴은 비장했다. 그 젖가슴은 이미 충실히 봉사했다. 그리고 숨이 끊어진 존재가 준 생명의 숭고한 낙인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위에는 처녀의 순결함 대신 모성의 위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쪽 젖꼭지 끝에 하얀 하나가 얹혀 있었다. 언 젖 한 방울이었다.
우르수스는 어떠한 패거리에도 속하지 않았다. 우르수스는 오직 우르수스와 함께 살았다. 자신과 마주해, 자신을 벗 삼아 살아가는데, 늑대 한 마리가 그곳으로 다정하게 주둥이를 쑤셔 넣었을 뿐이다. 우르수스의 열망은 카리브 지역의 인디언이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불가능해 그는 홀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 홀로 사는 사람은 문명 세계가 용인한 야만인의 축소형이다. 사람이란 떠돌면 떠돌수록 그만큼 더 외롭다. 그것에서 그의 끊임없는 이동이 비롯된다. 어디에 정착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길들여짐으로 여겨졌다. 그는 자신의 길을 계속 가며 생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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