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여러 단편집을 읽은 후에도 나는 오래도록 그녀의 작품을 기다렸다. 어느 날인가, 신간이 나왔다고 해서 찾아보니 소설이 아닌 에세이였지만 오랜 시간 글을 쓰며 살아왔던 작가의 생각이 역시나 정제된 언어로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문학이라는 연결 고리 외에는 그동안 내가 전혀 알 수 없었던 살림하는 여성으로서 겪는 일상의 고단함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은 소설가 오정희가 아닌 인간 오정희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해주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오정희 작가처럼 밥하기 싫어서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면서, 그렇게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글을 쓸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오랫동안 갖지 못한 채 조리대 옆에 나란히 놓인 책상에서 글을 썼던 작가는 이제 밥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의 소설들은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워낙 과작(寡作) 하는 작가라 언제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 식탁 머리맡에서 방금 지은 엄마의 밥을 바랄 때의 심정으로 기쁘게 기다려 봐야지.

"책이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가 되어야 한다"라는 카프카의 글은 제 기억에도 남아있던 것입니다. 그것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직업을 가진 우리 모두의 꿈이겠지요. 거짓 위안과 거짓 희망이 아닌, 진정으로 우리를 비탄에 빠지게 하고 슬퍼하며 그것을 통해 일으켜 세우게 하는 힘을 문학을 통해 구현하고 싶다는 것은, 아무리 세월과 함께 타협하고 자신의 꿈을 낮춰가는 중에도 날카로운 가시처럼 불씨처럼 아프게 남아 있는 초발심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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